태어나서 줄곧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고향이란 단어는 마음이 가뭇없이 막연해진다. 그럼에도 한살 한살 늘어가는 나이가 속도를 부쩍 더해가는 요즘은 문득 예고도 없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날들, 그 거리, 그 사람들이 마당을 서성이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에서 깨어 눈을 뜰 때 느닷없이 눈앞에 펼쳐진다. 윤곽이 서서히 선명해지는 영상들로 아릿한 바람이 가슴에 일곤 한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던 대구에서의 기억은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스라히 손에 잡히지 않는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로 스물거리며 올라오던 열기에 지쳐 메고오던 가방을 내팽개치고 길가에 앉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외할머니댁 마당의 너무도 시원했던 우물이 더운 여름의 기억과 늘 함께 있다.
서울로 이사하고 한 2년은 한강변 가까이에 살았다. 봄이면 엄마따라 언니따라 바구니 옆에 끼고 강둑에서 나물을 캐고, 홍수가 지는 여름날에는 방까지 물이 차올라왔다. 마당을 출렁이는 빗물에 배를 띄워 놀던 장마철도 궂은 비의 기억보다는 하늘을 찌르는 웃음소리의 울림이 더 크다. 어두워지도록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의 이름이 집집마다 불리워지던 철길이 가로놓여 있던 동네에서 밤늦도록 우리를 그토록 재미있게 해주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가물거리지만 노는 게 정말 행복했던 어린 날을 그때 지냈다. 어둑한 동네 만화방에서 꿈같은 순정만화에 정신을 빼앗겼던 시절도 그 무렵이었다.
철도 살짝 들어가던 사춘기를 지냈던 곳은 강북에서의 날들이다. 성북구 돈암동, 지금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그곳일 것이라 여겨질 만큼... 그곳에서의 추억들은 몇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이다. 즐거웠던 기억과 마음 아픈 기억들이 서로 그만큼씩 다가온다. 언덕 위에 높게 서 있는 교회당, 그 언덕 아래 골목마다 어깨동무하고 거칠 것없이 몰려다니던 친구들과 사계절을 열번도 넘게 같이했던 역사가 그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집 마당에도 분꽃이 흐드러졌고 세상을 알아가던 가슴에 사랑의 설레임을 가져다 준 것도 그 시절이다.
세월이 더 할수록 애틋해지는 고향에의 그리움은 9월을 맞으며 가을을 채비하는 마음에 먼저 와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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