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에는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있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서 가을은 추석과 함께 시작되었다. 도심의 바쁜 생활 속에서 추석에 고향 갈 준비를 하고 귀향길 교통 정체를 뚫고 고향에 도착해 부모님을 만나면 그제야 가을이 시작된 것을 기억했었다. 고향 마당에 떨어진 알록달록한 낙엽들을 보며, 부모님이 준비하신 푸짐한 음식과 과일 그리고 사랑을 먹으며,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나 쉼을 누리며 가을을 느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4년을 버클리에 둥지를 치고 살다보니 가을이 오고 가는 것을 잘 못 느끼며 살았다.
매일 선선한 아침과 저녁, 낮에는 따뜻한 햇살, 이런 좋은 날씨 덕에 계절의 변화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제는 버클리에도 가을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Cedar 길가에 휘날리는 노란 낙엽들, 차창 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들, 분명 가을이 오고 있었다. 가을이 오는 길을 달리며 가을이 오면 한국에서 즐겨 읽던 김현승 님의 시 한편을 떠올렸다. 시의 시작은 이러하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나에게 있어서 가을을 잊고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낙엽을 밟으며 특별한 그분과 나눌 수 있는 교제의 시간을 잊고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중간은 이렇게 전개된다.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이 되어 길가 정원에 먹음직스레 익어가는 과일들……나에게 허락된 사랑의 대상인 남편과 아들들에게도 이런 사랑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열매를 위해 정성으로 가꾸고 있는지 나를 돌아본다.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사람들은 가을을 고독의 계절이라 한다. 나도 가을에 외롭고 쓸쓸함을 많이 느꼈고 그로 인해 가을은 나의 내면을 깊이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었다. 이제 잊고 있던 가을을 기억하고 홀로 있음의 즐거움을 누려야겠다. 이번 가을에는 낙엽을 밟으며 그분께 기도하고, 이번 가을에는 그분이 허락한 가족을 깊이 사랑하고, 이번 가을에는 그분 앞에 홀로 있는 고독 속에서 내 영혼의 쉼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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