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부의 흉악범 수용시설인 스미스 교도소가 25일 낮 특별한 한국 손님을 맞았다.
애틀랜타총영사관에서 사건·사고 담당 영사로 재직 중인 손창현(43.경찰대 9기) 경정이었다.
점심을 앞두고 식당으로 나온 재소자 340여명은 "한국 영사를 소개한다"는 스탠리 윌리엄스(47) 교도소장의 말에 ‘저 사람 뭣 하러 여기 왔지’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모든 이목이 한 사람에 집중된 순간 손 영사는 "여러분이나 나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마치고 연단 근처에 놓인 드럼으로 향했다.
드럼 의자에 앉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스틱을 잡은 뒤 현란한 손놀림으로 북과 심벌을 때렸고, 정적만 흘렀던 ‘객석’은 금세 헤비메탈 공연장으로 변했다.
열광의 드럼 공연이 끝나자 교도소 간부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와 박수로 호응했다.
다시 발언대로 돌아온 손 영사는 "여기서 한국인 재소자를 만났는데 나와 또래였다. 그 사람이나 나나 모두 당신들의 형제"라며 관심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어릴 적 가족들이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투게더(함께)’였는데 여러분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와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다시 기립 박수가 터졌다.
교도소 설립 후 처음이라는 외교 사절의 드럼 공연은 손 영사의 말대로 한국인 재소자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이 교도소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종신형을 받은 한국 국적자 이모씨가 복역하고 있다. 이씨는 "감옥에 들어온 지 20년 만에 처음 한국 영사를 만났다"며 무척 반가워했다.
손 영사의 드러머 변신은 인권에 대한 남다른 소신과 접근방식에서 비롯됐다.
그는 2011년 김근태 전 민주당 대표가 타계하자 고인이 생전 이근안 전 경감에게 고문을 당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추모 조화를 놔 화제가 된 인물이다.
경찰청 인권보호계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경찰서 유치장의 쇠창살을 없애 경찰 인권사에 새 장을 열었다.
그는 "한국 재소자에 대한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선 교도소 간부는 물론이고 재소자들과도 인간관계를 쌓는 게 필요하다"며 "우리 재소자가 차별 없는 수형생활을 한다면 조기 석방 가능성을 높이고 교정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중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50)씨가 고문 피해를 당한 사실이 알려진 것을 계기로 영사가 재소자를 면회하는 영사면담 제도를 강화했다.
26일 외교부에 따르면 미국에는 10월 현재 212명이 복역 중이다. 손 영사가 담당하는 미국 동남부 6개 주 교도소에는 조지아주 15명을 비롯해 21명의 기결수가 있다.
그러나 그의 담당 지역 범위가 남한 면적의 10배가 넘는 데다 재소자들이 각급 교도소에 흩어져 있어, 쥐꼬리만한 예산으로 이들의 인권을 챙기기에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손 영사가 드럼을 친 것도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그는 "우선 조지아주부터 한국인 재소자를 스미스 교도소 한 곳으로 모아 관리할 생각인데 다행히 얘기가 잘 됐다"고 전했다.
드럼 공연에 대해선 "어떻게 하면 제한된 시간 안에 미국인 재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재소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임팩트 있는 방식"이라고 했다.
손 영사는 경찰대 89학번으로 교내 그룹사운드 동아리인 ‘푸르뫼’에서 활동했다. 1992년 MBC 대학가요제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예선 탈락의 쓴맛을 봤지만, 이날 교도소 ‘특별무대’에 선 그는 ‘대상’을 거머쥔 최고의 스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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