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국내소식에 더 민감하고 관심도 많이 갖게 된다. 아마도 한국 내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열광하지도 않을 드라마나 오락프로에 웃고 울면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 10년전쯤에 가수 ‘비’를 좋아한 적이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운동을 하고 그 가수의 열심인 삶의 모습을 따라 생활하며 지냈던 적이 있었다. 아는 친구들 생일선물에 그 가수의 앨범을 사서 선물하는 그런 열혈 아줌마팬 중의 하나였지만 그 팬심도 얼마 안가 사그러들면서 무덤덤해졌었다. 그러다 다시 한번 열광하기 시작한 그룹이 생겼는데 바로 JYJ 였다.
그 그룹에 열광하면서 소위 말하는 아줌마 팬심에 불이 붙여졌다. 바로 그때 그 그룹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컨서트를 한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주위에 친한 동생, 언니들을 부추겨서 함께 가자고 확답을 받고 티켓팅날 시작과 동시에 티켓팅을 해서 자리를 얻었다. 나름 빠르게 한다고 했는데도 이미 앞자리는 살 수가 없었고 13번째 열쯤 되는 곳으로 티켓을 사게 되었다. 그 콘서트를 가기 전까지 그 가수들의 컨서트 실황을 보면서 노래를 익히고 함께 하기로 한 플래쉬몹을 배우며 가슴 벅차하면서 기다렸었던거 같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남편과 딸도 기가 찬듯이 바라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열정이 있음을 경외의 눈으로 보는 듯 했었다.
차안에서는 계속 같은 음악이 나오고 오히려 딸이 그 노래들을 다 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느덧 컨서트 날이 왔고 함께 컨서트장으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설레이며 즐거웠었는지 모른다. 장장2시간동안 딸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율동을 하며 삶의 생동감을 다시 한번 느꼈었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본 컨서트의 함성에 잠시나마 학창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였고 가끔씩 다람쥐 쳇바퀴도는 삶에 내가 내게 주는 달콤한 선물이 아니였었는지 생각해 본다. 아직까지도 이런 정열을 가질 수 있는 아줌마임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열정을 품은 할머니를 목표로 살아가려 한다.
=======
윤연실씨는 서울 출생으로 한양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결혼 후 도미, 미국생활 15년차로 북가주 한인 방송국 (KEMS) 문화센터 요리강사, 한국역사문화위원회(KoHEC) 창립 멤버 및 현회장, 실리콘밸리 PTA 회장 역임 및 현 역사교사, CPA candidate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