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독일 2차 대전 후 최대 1,400여점 찾아내
▶ 나치강탈 목록과 원 소유주의 주장 서로 엇갈려 미국측 리스트 공개 요구에 독일 측 묵묵부답
마티스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
전쟁은 파괴와 약탈을 동반한다. 여기엔 시간과 공간의 예외가 없다. 유사이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재물과 여자는 승자가 ‘자의적 소유권’을 행사하는 전리품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이 대표적인 본보기에 속한다. 훈 족이 유럽에서 자행한 약탈 역시 유럽인들의 뇌리에 전율스런 공포의 전설로 각인되었다. 나폴레옹 이후 정복자들의 약탈 대상에 미술품이라는 또 하나의 목록이 추가됐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끝 무렵, 역사가와 큐레이터, 학자 등이 팀을 이뤄 유럽 전역에 연결망을 구축한 이유도 이 지역의 문화적 유산을 보호하고 나치와 그 부역자들이 약탈한 문화재와 숫한 미술품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유럽의 포성이 멈추었을 때 ‘모뉴먼츠 멘(Monuments Men)’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도난 예술품 회수 프로젝트 그룹은 총 115점의 그림과 190점의 소묘작을 찾아냈다. 영국군이 1945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찾아낸, 진귀한 예술작품으로 가득찬 6개의 상자(crate) 역시 이들의 수중으로 넘어왔다.
지난주 미국의 국립 문서보관서인 내셔널 아카이브에서 약탈 예술품환수 단체인 홀로코스트 아트 레스티튜션 프로젝트 설립자인 마크 마수로브스키가 발굴한 문서에 따르면 당시 회수된 예술품은 모두 힐데브란트 걸릿이라는 원 소유주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수로브스키는 모뉴먼츠 멘이 한때 관리를 맡았던 컬렉션이 지난 2012년 걸릿의 아들 코넬리우스의 아파트에서 독일 수사관들에 의해 압수된 1400점의 도난 예술품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모뉴먼츠 멘은 애써 회수한 나치 독일의 약탈품을 그들의 장물아비 손에 넘겨주었고 걸릿이 이를 자신의 아들에게 유산처럼 증여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주 독일 수사당국이 찾아낸 도난 예술품 1400점은 2차 대전 종전이후 최대규모에 해당한다.
이제까지 확인된 바로는 힐데브란트 걸릿이 지난 1950년 모뉴먼츠 멘으로부터 일차로 돌려받은 그림은 8점이었다.
당시 걸릿은 8점의 그림은 모두 자신이 합법적으로 취득한 것이라고 우겨 소유권을 인정받았지만, 현재 마수로브스키의 약탈 예술품 데어터베이스에는 나치가 강탈해간 작품으로 등록되어 있다.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파리의 주드 폼 박물관에 강제 수거한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었고, 걸릿의 손으로 넘어간 8점이 이들 가운데 섞여 있었다는 것이 마수로브스키의 주장이다.
그의 데이터베이스에 도난품으로 분류된 8점은 모두 프랑스 화가 미셸-조지-미셀의 작품으로 1941년 나치 요원들이 그의 아파트와 스튜디오를 급습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이들에 이어 63년전 힐데브란트 걸릿이 모뉴먼츠 멘으로부터 넘겨받은 또다른 그림 중에는 오토 딕스, 게오르그 고츠, 에릭 헥켈, 막스 베크만, 크리스티안 롤프스, 프란츠 렌크 등 독일 인상주의 화가들의 보석 같은 작품이 수십 점 포함되어 있었다.
종전후 5년간 걸릿은 모뉴멘츠 멘이 환수한 약탈품은 나치에 의해 빼았긴 자신의 합법적 소유물이라며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했다.
모뉴먼츠 멘은 그의 주장을 반박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환수한 그림은 모두 걸릿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5년간 실랑이를 벌인 끝에 모뉴먼츠 멘의 총괄 책임자였던 미국인 시오더어 하인리히는 1950년 12월 15일 원소유주에게 환수 예술품을 모두 양도한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마수로브스키는 지난주 자신이 입수한 문서를 제시하며 걸릿이 나치로부터 약탈 미술품을 넘겨받아 처분해주고 이득을 챙겼던 몇 안되는 전문 딜러 가운데 한명이었다고 주장했다. 걸릿이 취급했던 그림은 아돌프 히틀러의 ‘제 3제국’ 요원들이 유대인 부호들과 점령자 박물관에서 강탈해온 것이었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나치 독일은 전쟁비용으로 사용할 외화가 필요했고, 이 중 일부를 점령지에서 징발한 예술품 매매를 통해 조달했는데 이 과정에서 장물아비 역할을 한 핵심인물이 바로 걸릿이었다는 얘기다.
마수로브스키는 모뉴먼츠 멘이 활동하던 시절엔 지금과 같은 전산망이 갖줘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탈품의 매매경로는 물론 그 명단 조차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1950년 모뉴먼츠 멘이 작성한 나치의 약탈품 명단에는 구아르디, 프라고나르드, 캐스파 넷셔, 루이스다엘과 롬보우츠, 막스 샤갈 등 이탈리아와 프랑스, 네덜란드의 대가들이 남긴 작품도 섞여 있었다.
독일 수사관이 지난주 걸릿 2세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압수한 1400점의 미술품 가운데 일부가 모뉴멘츠 멘이 힐데브란트 걸릿에게 넘겨준 작품일 수 있다는 마수로브스키의 주장이 나온 후 미 국무부는 독일 정부에게 사실확인을 위해 이번에 입수한 도난 예술품 1400점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제까지 독일 정부는 1400점 중 마티스의 ‘진주 목걸이를 한 여인’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을 뿐 전체 명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마티스의 작품은 프랑스의 유명 딜러인 폴 로젠버그가 원소유주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식을 접한 로젠버그의 손녀딸 마리안느 로젠버그는 “오래전 사라진 마티스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쁘다”며 독일 정부 당국이 걸릿으로부터 압수한 미술품의 명단과 사진을 조속히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설사 독일 정부가 명단을 당장 공개한다 해도 원소유주를 명쾌하게 가리기 힘들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나폴레옹 이후 해외에서 약탈해온 2000여점의 미술품이 반환되지 않은 채 여러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되어 있다. 자신이 원 소유주라며 반환을 요구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한결같이 믿을만한 증빙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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