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벨평화상 수상자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 본보 단독 인터뷰
▶ 희망 없던 나라에 폴란드 출신 교황 탄생, 세계 이목집중 공산주의 붕괴에 큰 역할, 평화로운 세상도래는 자유·가치 논의부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오른쪽)이 통역과 함께 본보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레흐 바웬사(70) 전 폴란드 대통령은 본보와 화상으로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노조 지도자이자 정치인으로서의 경험과 개인적 배경 및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것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6일 웨스트할리웃에 있는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는 폴란드의 명장으로 오스카 생애업적 상을 받은 안제이 바이다(87)의 최신작‘바웬사: 희망의 남자’(Walesa: Man of Hope)가 폴란드의 2013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바웬사는 이 영화를 만든 악손 스튜디오의 바르샤바 사무실에 통역과 함께 나와 인터뷰에 응했다.
‘비웬사: 희망의 남자’는 폴란드 항구도시 그단스키의 조선소에서 전기공으로 일하던 바웬사가 동료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을 시작하면서 강력한 노조 ‘솔리대리티’의 지도자가 되고 이어 노조의 반체제 활동이 전국적으로 불씨가 되어 결국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계기를 만든 바웬사의 삶을 뉴스필름을 섞어 기록영화 식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노조 지도자로서의 활동과 함께 아내와 자녀들과의 가족관계를 함께 아름답고 감정 깊이 그린 훌륭한 전기영화다.
특유의 콧수염에 살이 토실토실 찐 바웬사는 백발의 일흔 나이에도 불구하고 홍조를 띤 얼굴이 마치 장난꾸러기 소년 같았는데 미소를 지으면서 큰 제스처와 함께 유머 있게 질문에 답했다.
인터뷰가 신이 난다는 듯이 쾌활했는데 매우 서민적이어서 이웃집 아저씨와 얘기하는 기분이었다. 바웬사는 자녀를 여덟이나 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폴란드 태생의 교황 고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말할 때는 손으로 성호를 긋기도 했다.
-영화제작에 어느 정도 개입했나
▲내가 개입하면 바이다가 표현하고자 하는 뜻에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일절 개입 안 했다. 바이다를 만나는 것조차 거절했다.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땐 별로 만족하질 않았었다. 바이다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즐길 수 있었다. 아름다운 영화다.
-지금 와서 과거를 돌아다보는 소감은 어떤가.
▲매 세대는 나름대로의 어려움과 사명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의 부모님이 나누는 조국이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대화를 자주 들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이 같은 소망을 물려받은 나는 그 뒤로 부모님이 잃어버린 꿈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서서히 이를 쟁취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원한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나는 지극히 만족하고 있다. 다만 하나 유감인 것은 그 때 경제개발을 생각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미국보다 더 경제적으로 앞서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미처 못했다. 어쩜 그것이 실수일는지도 모르겠다.
-전직 노조 지도자요 대통령으로서 현 폴란드의 노동자 계급의 처지에 만족하는가.
▲폴란드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에 만족 못한다. 폴란드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해 만족 못한다.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나서 우리가 이루려고 했던 것은 자본주의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나 종업원들에게 아무 것도 공짜로 줄 수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이번에는 그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내가 그 때 이들의 반감에 따랐다면 아마도 지본주의를 철폐했어야 할 것이다. 난 자본주의를 위해 여러 가지를 못 본 척해야 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선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일고 있지만 그것은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저항이지 자본주의의 원칙에 대한 의문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소수층과 다양성을 이해하지만 결혼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었다. 이것은 꼭 지켜져야 한다. 나는 자유와 다양성을 존경하지만 내 의견 또한 존경한다. 난 단 하나인 내 아내하고만 있고 싶다. 그것이 내 눈엔 결혼이다. 동성끼리 함께 있으려면 결혼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을 필요로 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동성은 아이를 낳지 못하지 않는가. 난 이제 너무 늙어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나 아무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누가 나의 노년 연금을 위해 일할 수가 있단 말인가.
-평범한 노동자에서 체제의 하나인 국가의 대통령이 되고 나서 경험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삶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난 노조운동가나 정치인이 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난 아주 가난하나 원칙을 지키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모두 서로를 잘 아는 가톨릭 신자의 마을이다. 그런데 후에 내 인생의 배가 마을을 떠나 다른 세상을 향해 자꾸 멀어져가면서 나는 내가 배운 삶과 다른 세상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심이 많고 단호한 사람인 나는 그래서 어떻게 해서 두 세상이 다른 것인지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그와 함께 나는 더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고집이 셌었다. 내가 여덟 살쯤 났을 때 동네의 신부님이 틀린 말을 하고서도 그를 인정 안 해 나는 그를 두 달간이나 따라 다니면서 잘못을 인정하라고 못살게 굴었다. 그랬더니 신부님이 마침내 잘못을 인정하면서 나보고 “너는 이다음에 높은 자리에 오르든지 아니면 감옥에서 썩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난 그 둘 다 경험했다.
-1979년에 폴란드 추기경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됐고 그 이듬해 조국을 방문했는데 그 같은 역사가 폴란드를 궁극적으로 자유국가로 만드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가.
▲당시 폴란드에는 20만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주변국가에도 100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핵무기에 포위돼 있었다. 그래서 폴란드가 소련으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희망이 없던 때에 폴란드 사람이 교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선출 1년 후 폴란드를 방문했는데 그 때 세계의 눈은 폴란드에 집중됐었다. 교황을 보려고 전 국민이 몰려들다시피 했는데 이런 현상을 보고 놀란 것이 소련이었다. 그들은 거의 공포에 질리다시피 해 교황 암살까지 생각했었다. 그 때 교황은 폴란드 국민을 하나로 단결시켰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무너뜨릴 혁명을 시도하지 말고 함께 기도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떳떳이 지구상으로 나아가라고 말했다. 교황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공산주의로부터 해방되는데 시간이 훨씬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공의 50%는 교황에게 30%는 내게 그리고 나머지 20%는 그것에 기여한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하면 세계가 대중의 봉기 없는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올 수가 있다고 생각 하는가.
▲우리는 미래의 세상이 단지 자유에만 바탕을 둘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함께 나눠 가질 가치에 바탕을 둘 것인지에 대해 먼저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두 번째를 결정한다면 그 다음에는 자본주의 체제를 실용적인 것으로 개혁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물을 수가 있다. 그와 함께 민주주의도 어떻게 하면 오늘 날에 맞도록 효율적으로 개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을 수가 있다.
우리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이런 개혁은 혁명처럼 큰 것은 아니다. 우리가 먼저 문제에 대한 필요한 개혁을 제공한다면 혁명이나 봉기나 전쟁도 회피할 수가 있다. 따라서 실제로 항거나 원망이 시작되기 전에 해결책을 찾자고 난 늘 강조해 왔다.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운용되려면 자본의 소유주를 현재보다 세 배는 늘려야 한다. 자본이 너무 소수에 집중돼 있다.
이것을 실현하려면 우선 대기업보다 작은 기업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직업은 정치가들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들이 주는 것이다. 실업은 옛날에 서로 나라끼리 먼저 앞서 가려고 경쟁할 때에 있던 일이다. 그래서 약자는 늘 처지곤 했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우리는 그런 경쟁을 하지 않는다고 보건대 이제야 말로 뒤에 처진 사람들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본다. 나는 모두가 직업을 가질 만큼 충분한 일거리가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구 도시들을 보라. 난 이것들을 모두 허물고 새 도시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말도 나오겠지만 적어도 서서히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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