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간 노동, 굴레를 끊자] <상> 법부터 바꿔야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사무실마다 불이 훤하게 커져 있는 서울 시내의 한 고층 빌딩에서 직장인들이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의 한 정보기술(IT)업체에서 일하는 웹 디자이너 김모(34)씨는 지난 주에 하루 평균 10시간 30분씩, 총 52시간30분 간 일했다. 법정 근로시간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한도인 12시간도 넘겼지만 김씨는 "이 정도면 평범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이 많으면 하루 12, 13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의 회사는 IT업계에 흔한 4, 5단계 하청을 거쳐 낮은 단가로 수주하는 구조여서 최소한의 인원이 최대한 많은 일을 한다. 직원 3, 4명만 충원돼도 만성적 야근이 없어질 것 같지만 사업주는 인건비를 이유로 인력 충원을 계속 미루고 있다. 두 살 된 자녀가 있는 김씨는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볼 수도 없는데 늘 잠든 모습만 보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다면 가족들과 시간도 보내고 운동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시간 근로는 우리나라 대다수 노동자에게 만성화된 고질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45%)가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휴일근로를 포함해 주 52시간 일하는 노동자도 12.8%나 된다. 지난해 연간 실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2,317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길고, OECD 평균(1,705시간)보다는 약 400시간 더 일한다. 이런 관행은 최소 인력의 장시간 근로를 통해 고정비용을 줄이려는 기업과, 잔업과 휴일특근 수당으로 임금을 높이려는 노동자들의 ‘담합’을 통해 지속돼 왔다.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선 법부터 바꿔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ㆍ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우리나라 연장근로에 대한 규제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실제로 연장근로 제한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25% 남짓"이라며 "장시간 근로 해소를 노사에 맡기면 현 체제를 유지하려고 집착할 것이기 때문에 법 개정 등을 통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달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켜 주당 최대 52시간만 일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협의했다. 지금은 휴일근로(16시간)를 연장근로 한도(12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해 주당 총 68시간까지 합법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 시행방법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을 두고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새누리당 김성태 이완영 의원의 안과 법 공포 후 즉시 시행하며 연장근로에 예외규정이 없도록 하는 민주당 한정애 의원 안이 올라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에 급격한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기업 규모별 단계적 시행, 예외적인 연장 근로 한도 확대 등 보완방안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초과근로는 기업이 경기변동에 대비하는 유일한 수단인데 이를 제한하면 기업에 부담을 초래하므로 법 개정이 아닌 노사 자율로 근로시간 줄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법 개정 자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유예기간 없이 모든 기업에 일괄적으로 즉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은기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소규모 기업에 늦게 적용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영세기업 노동자들만 저임금 장시간에 계속 시달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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