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그린 1905년 작품.
19일 게티스버그에서 열린 150주년 행사에서 남북전쟁 당시 북군으로 참전했던 흑인 군인들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미국 제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809~1865)이 1863년 11월19일 펜실베니아주 게티스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열렸던 북군희생자 추도식 행사에서 역사에 남는 명연설로 평가되는 ‘게티스버그 연설’을 한 지 19일로 꼭 150년을 맞는다.
이 연설은 불과 272단어로 구성된 2분 남짓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정치사상과 철학, 문화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전환점이었다는 후세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링컨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새롭게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미국 내에서 일고 있다.
미국 내 최고의 ‘링컨 전문가’로 통하는 하버드대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은 17일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860년 북부주들의 인구는 2,200만명 이었으며 이 중 무려 10%에 달하는 220만명이 전쟁에 참여하고 36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링컨이 아니었고 전임자인 제임스 뷰캐넌이 대통령으로 있었다면 220만명을 동원할 수 있었겠느냐"며 “오늘날 미군은 고작 우리 인구의 1%에 불과하다. 3억1,000만명 가운데 10%인 3,100만명이 과연 어떤 명분과 동기로 그들의 목숨을 희생하려고 하겠느냐"고 물었다. 역사학자들은 링컨을 보고 북군에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이는 압도적인 숫자의 우세로 북군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남북전쟁 최악의 전투로 평가되는 게티스버그 전투는 전쟁의 흐름을 북군 쪽으로 바꿔놓는 전환점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63년 7월1일부터 3일까지 치러진 이 전투에서 9만4,000명의 북군은 남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7만2,000명 병력의 공격을 격퇴했으나 독립전쟁 사상 최고의 사상자를 냈다. 사망자만 북군 3,155명, 남군 4,708명을 합쳐 7,863명에 달했으며 부상자와 실종자는 북군 1만9,900명, 남군 1만8,523명을 합쳐 3만8,423명 등 3일 동안 양 측 사상자만 무려 4만6,286명에 달했다.
<조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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