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남 (전직 카운슬러/ 메타천)
우리는 나면서부터 대개 부모로부터 호칭으로 이름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어른이 되어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든다고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간혹 있고, 예술인들은 예명 혹은 호를 짓고, 그 예명으로 더 알려져 있는 경우도 본다. 또 어릴 때 집에서 부르는 아명도 있고, 또 우리처럼 이민자들은 미국에 이민 와서 미국 이름을 갖는 경우도 자주 본다. 이런 호칭이 모든 사물에도 적용 되는 것 같다.
우리가 자랄 때는 이름을 집안의 항렬에 따라서 돌림으로 하는데 그러다보면 이름 선택에 제한이 있어서, 더러 여자아이한테 남자아이 이름을 짓는 수도 있는데 내가 그의 한 예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명만 들으며 살다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처음으로 나의 아명과 전혀 다른 남자 이름의 호적 이름이 있는 것을 알았다.
내 이름이 호명 되었는데도 가만있었더니 나를 입학식에 데리고 간 아버지가 손을 들며 대답하신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때는 짓궂은 남학생들이 더러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리기도 했다. 그리고 집안끼리는 여전히 나의 아명을 계속 쓰면서 이름이 둘인 아이로 별 생각 없이 자랐다.
그러다가 미국 와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나의 호적 이름으로 소개를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었고 몇 번씩 반복해서 말해야 했었고, 영어도 서툰데다가 이름마저 못 알아들으니 자주 당황했었다.
미국사람들에게는 여자이름인지 남자이름인지는 분간이 안되었겠지만 지금처럼 다양화가 안된 때여서 내 호적 이름이 미국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렸을 수도 있었다. 더하여 내가 처음 정착한 노스캐롤라이나에는 더 할 나위가 없었다.
도착 며칠 후에 사무실을 방문한 한 미국 부인이 미국 이름을 지어주며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여 그 이름이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재빠르게 퍼졌고, 또 결혼 후에 성까지 바뀌어서 나는 새 이름으로 이때까지 살아왔다.
젊어서는 새 이름이 다 마음에 안 들었을 뿐더러 혼동도 좀 있었다. 일할 때는 직장 이메일 (email) 이나 일 관계 테크놀로지 분야에 로그인 아이디 (LOGINID)에 나의 호적이름과 미국 이름 사이에 혼선도 있었다. 그리하여 간혹 이름을 바꾼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이름을 한번 바꾸어 볼까 생각 해 본 적은 있으나 나 자신 내에서부터 상당한 혼동이 올 것 같고 그렇다고 나의 근본이 향상 되는 일도 아니고 해서 그럭저럭 지냈다.
반면에 남편은 한 이름으로 살다가 시민권 받을 때 이름을 바꿀 기회가 있어서 미국 이름을 하나 할까 해서 내가 말렸다. 이름은 하나면 충분하지 그 이상은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이제 와서 보니 나의 새 이름이 나를 다양하게 한 것 같다.
세 이름이 나 자신에게 조금씩 틀리게 부각이 되는 것 같다.
즉 나에게 세 개의 신분이 (Triple Identity) 생긴거 같다. 호적이름은 공식이름으로 모든 일에 약간 사무적이고, 적절하려고 애쓰며, 주로 학교 동창들이 부르는 반면에, 아명은 따뜻하고 친근감이 있으며 좀 안일한 분위기로 친척들이 모이면 아명 끝에 이모, 고모를 붙여서 조카들이 부르며, 미국 이름 은 내가 어쩐지 좀 서구화되고 점진적인 감을 들게 한다.
나의 세 이름이 나를 다양하게는 했으나, 불필요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우리 애들 이름을 지을 때, 항렬도 안 따르고, 어디서나 부르기 쉬운 일반적 이고 보편적인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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