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경(은목 회장)
나는 매년 이 계절을 맞을 때마다 옛날 일곱, 여덟 살 어릴 때의 회상에 젖곤 한다. 70여 년 전, 일제(日帝)하에서의 설날 기억을 하는 것이다. 그 때, 그 나이 때에는 왜 그렇게 설날(음력)이 기다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
한 달 전부터 손가락을 꼽아 날짜를 세어가면서 설날을 기다리곤 했다. 겨울 김장을 담그느라 밤에 호롱불을 켜놓고 깍두기를 써는 어머니와 누나 옆에 앉아서 설날에 먹을 음식 준비에 대하여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였다.
설날이 되면 모두 새 옷으로 갈아입고 제일 먼저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그리고부터 본격적인 세배활동의 즐거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부잣집부터 세배를 하러갔다. 아랫목에 병풍을 두르고 양반다리로 앉아 있는 어른들에게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하면서 절을 하면, 어른들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곶감, 대추, 밤, 때로는 돈을 주기도 하였다.
어린 세배꾼들은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고 와서 마을 회관에 모두 모여 누가 많이, 무엇을 받았는지를 비교하곤 했다. 조금 덜 받았다, 못 받았다 싶으면 다시 그 집을 찾아 절하러 가기도 했었다. 얼마나 좋은 시절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나를 낮추어 새해 문안 인사를 하니 먹을 복이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땅에 대고 머리를 숙인 자세는 곧 낮아진 자세요,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바로 겸손이며 경배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기복적인 경우가 있고, 이와 반대로 예배의 경우가 있다. 어느 경우가 되었든지 하나님은 무릎 꿇고 절하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신다. 비록 하나님을 경배하기 보다는 세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무릎을 꿇은 경우에라도 하나님은 초기적으로는 그 나름의 복을 주시는 것이다.
히브리어의 ‘바라크(Barak) ‘라고 하는 단어는 ‘무릎을 꿇는다’라는 뜻이고 ‘부라카(Buraka)’라는 단어는 축복이란 뜻이다. 같은 어원을 지닌 이 단어들은 무릎을 꿇을 때 복을 받는다는 포괄적인 뜻이 된다.
내가 오늘 교회에 나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아 있다면 무엇을 위함인가를 스스로에 물어 보고 그 답에 의하여 나는 나의 신앙의 성숙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정령,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시95:1-7)
이 설날에 그동안 헤어져 살던 부모와 형제, 친척들과 같이 하루 이틀을 함께 지내기 위하여 고향을 찾아 가는 수많은 귀성객들의 행렬을 TV화면을 통하여 보게 된다.
나를 낳고 기르며 가르치느라고 세파에 시달려 손발이 닳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낀, 아직 그곳에 계시는 부모형제 가친(家親)들을 눈망울에 그리면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온갖 고초를 당하신 예수님 아버지 집을 찾아 가는 눈물진 얼굴로 본향을 찾아가는 성숙한 나그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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