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택 (보스턴 늘푸른교회 담임목사)
얼마 전 여러 교회들이 함께 하는 모임에서 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마침 정말 반가운 친구가 그 자리에 있었어요. 1999년 가을, 제가 보스턴에 왔을 때부터 알았던 친구니까 횟수로는 16년인 친구예요. 얼굴을 못 본지가 어느덧 2년은 되어 막연하게 소식이 궁금했던 차에 참 반가웠습니다. 다과를 함께 나누는 시간에 친구를 찾아 갔어요.
그런데 친구가 대뜸 하는 말이 “진택아 너 목사님 되더니 굉장히 근엄해졌다”하는 거예요. 그래서 조용히 진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아냐 졸려서 그래” 서로 한바탕 웃고는 이제 사는 얘기로 들어갑니다. “진택아 어떻게 지내니?” 다시 조용히 진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엉망진창이야” 이번에는 더 크게 빵 터졌습니다.
“엉망진창이야”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이 한마디에 ‘그래 우리는 친구지. 허물없는 친구잖아. 서로 잘난 척 할 필요 없잖아.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니?’ 이런 마음이 다 녹아 있는 거죠. 구구절절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습니다. 왜 엉망진창인지 설명할 시간은 없었어요. 그리고 굳이 꼭 내 삶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요. 말은 하지 않아도 이미 친구의 삶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짊어지고 있는 각자의 삶에 무게가 만만치 않잖아요.
“엉망진창이야” 요즘 저에게 안부를 묻는 분들에게 제가 종종 하는 대답입니다. 정말 적절한 표현이에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일들이 제 삶 구석구석에 벌어져 있습니다. 부모님의 건강, 아이의 건강, 이사, 자동차, 보험, 학교, 신분, 세금보고, 집, 등등. 거기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의 어긋난 관계들. 참 쉽지 않습니다.
나름 스스로 참 샤프(sharp)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아니란 걸 아는 거죠.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고, 모임의 장이 되고, 어른이 되어 책임질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대책이 없습니다. 내 생각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엉망진창이야” 그런데 참 재미있습니다. 인정하고 나니까 가벼워져요. 삶의 무게에 눌려 쓰러져 있어야 할 텐데, 툭툭 털고 일어날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게 예수님을 믿는 복인가 봅니다. “예수께서 … …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17). 엉망진창인 우리를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 그 은혜로 살아갑니다.
친구가 물어봅니다. “사역은 어때?” 웃으며 대답합니다. “사역은 너무 너무 즐겁지. 우리 교우들이 날 사랑해주니 넘 행복하지요” 삶은? 글쎄요. 쉽지 않습니다. 살아가면 갈수록 더 분명해 집니다. 삶의 문제들이 해결 돼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행복합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부어주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할 뿐입니다.
친구하고는 별로 대화도 몇 마디 나눠보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우리가 사느라 얼마나 바빠요. 서로가 급히 다른 일정 때문에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떠나며 기약 없는 인사를 합니다. “우리 연락하자! 밥 한번 먹어야지!” 그리고, 또 2년 후 어떤 모임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 만남을 기대합니다. 물론 그 때도 묻겠죠. “어떻게 지내?” “사역은 어때?” “엉망진창이야” 한바탕 웃으며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기쁘게 나누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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