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씩이나 신사임당 상을 받은 이정희 할머니.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일곱 자녀의 어머니. 그러나 누구의 아내, 어머니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키워내며 예술가로서의 열정을 꽃피운 신사임당. 흔히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일컫는 신사임당 상을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받은 여성이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버지니아 버크 레이크 가든 아파트에 사는 이정희 할머니. 1924년 5월생으로 올해 아흔 하나인 이 할머니는 지난 16일 코리안 벨 가든 3주년 기념행사에서 신사임당상을 받았다.
한국에 이어 미국서도 ‘신사임당상’수상‘2관왕’
26세 6.25때 남편 잃고 두 자녀 흘륭하게 양육
한국 미용업계의 대모…프란체스카 여사 등 단골
6.25 전쟁 때 남편을 잃고 미용업으로 두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했으며 미국으로 이민 와 노인들을 위한 봉사에도 앞장서온 공로를 기리는 것이었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늙은이인데 귀한 상을 주셔서 과분할 따름입니다.”
겸손해 하는 이 할머니는 한국에 거주할 당시 대한미용협회의 신사임당상도 받아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2관왕’의 영예를 얻은 이정희 할머니의 삶은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전형적인 한국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 6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난 이 할머니는 6.25 전쟁 당시 남편을 잃었다. 정보기관에 근무하다 인민군에 납치돼 간 후 생사 소식이 끊긴 것이다. 나이 스물여섯에 청상이 되었지만 어린 두 아들을 키워야만 하기에 실의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남다른 미용 기술이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1930년대 한국에 미용업이란 신직종이 생기자 그는 서울과 일본을 오가며 미용기술을 익혔다. 한 일본인과 함께 서울의 반도호텔 안에서 미용실도 운영했다.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드나들던 반도호텔의 미용실은 장안에서도 화제였다. 해방이 되자 그는 을지로 3가에 숙명미장원을 차렸다.
“나중에 간첩사건으로 유명해진 김수임, 시인 모윤숙 같은 당대의 유명 여류들이 다 내 단골이었어요. 이승만 박사가 경무대 주인이 되자 프란체스카 여사의 머리도 내가 해줬어요. 모윤숙 씨가 날 데리고 와서는 경무대로 데리고 가는 거야. 내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여러 명이 맡아 프란체스카 영부인의 머리를 해드리는 거지.”
미용업계에서 명성을 쌓으며 대한미용협회 회장도 7년이나 지냈다. 한국 미용업계의 대모였다. 그 와중에 맏이는 연세대 영문과, 둘째는 서울대 상대를 보내며 잘 키웠다.
“얼마나 봉건적이고 숨 막히는 한국사회였어. 여자 혼자 키우는 자식들이라 더 엄하고 정성들여 키웠어. 다행히 반듯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울 따름이지.”
미국 이민을 결행한 건 자식들이 장성한 1972년. 워싱턴 D.C. 13가에서 미장원을 차렸다. 3년간 운영하다 가발 비즈니스에 뛰어들기도 했다.
은퇴한 후에는 봉사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미주한인노인봉사회 초기 멤버로 지난 9년 동안 여러 사회봉사에 앞장섰으며 무료 미용봉사를 할 때는 자신의 아파트를 장소로 제공해줬다. 노인봉사회 윤희균 명예회장은 “9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봉사하시고 건강이 좋을 때는 주변 분들의 머리도 매만져 드린다”며 “참으로 모범적인 삶으로 신사임당 상을 받을 만한 분”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강해질 수밖에 없었어. 나도 그랬고… 내 보잘 것 없는 재능이지만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쓰일 수 있으면 내가 고마운 거지.”
이정희 할머니는 91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환하게 웃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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