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 아이와 인연 위로행사 시작
▶ 은퇴 선교사·목사에도 ‘위안의 밤’
지난 2010년 6.25 참전용사들과 함께 한국전 60주년 기념 참전용사 위안의 밤 행사를 논의하던 한미문화협회 김원보 회장.
김원보 한미문화협회 회장은 “평생의 봉사활동을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입양아나 한국전 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말을 들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한미문화협회장 김원보씨]
김원보 한미문화협회장은 ‘한인 입양아의 대부’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30여년동안 줄곧 재미한인 입양인들을 위해 ‘한인 입양인 가족의 날’ 행사를 펼쳐왔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6.25 참전 미국용사들을 위한 위로행사’와 한국에서 선교하다가 은퇴한 미국 선교사들을 위한 ‘은퇴선교사 위안의 행사’를 펼치는 등 잊혀지기 쉬운 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평생 펼쳤다. 한 두 번 하다 말기 쉬운 봉사를 위한 행사를 30여년 넘게 해 온 그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김원보 회장을 만나 봉사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입양아들과의 인연
“아직도 그때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민 초기인 1970년대 초반 벤추라 카운티에 살면서 모텔 운영, 부동산 투자 비즈니스를 할 때라고 기억돼요. 이웃집에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살던 5세 한인 입양소녀 주디가 있었는데 늘 힘이 없고 의기소침했습니다. 그래서 이 소녀에게 한인의 뿌리를 확인해 주고 미국인 부모에게도 한국을 알려주기 위해 한인 입양아를 위한 사랑의 잔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벤추라 카운티에만 한인 입양인이 1,000여명이 넘게 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1982년 한미문화협회 설립 후 1983년 3월26일 첫 ‘한인 입양인 가족의 날’ 행사를 벤추라 카운티 카마리요 센터에서 처음 열었다.
“하필이면 그날 비가 많이 와서 사람들이 제대로 모일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시간이 되니까 초청인사 700여명이 타주에서까지 예정대로 모여 감격했습니다. 미국인 양부모들이 한복을 입고 한인 입양아들의 손을 잡고 참석하는 것을 보고 힘들긴 하지만 행사를 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행사는 입양인들에게 뿌리를 찾게 해주고 양부모에게 한국을 알리며 미국사회에는 재미동포의 입양가족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잔치로 진행됐는데 참석자들은 한식을 먹고, 태권도와 고전무용, 사물놀이 공연 등을 관람하면서 한국 문화를 접했다.
이렇게 시작된 행사가 해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한인 입양아를 둔 미국인 가족의 참석이 크게 늘었고 그가 ‘한인 입양아의 대부’로 불려지는 계기가 됐다.
한 번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한인 자매가 미조리주에서 가출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한국일보에 소개된 김 회장의 기사를 보고 그에게 찾아달라는 연락이 와서 입양 부모들과 함께 네트웍을 가동해 우여곡절 끝에 그 소녀를 찾아 양부모의 품에 안겨준 적도 있었다고 한다.
■ 주류사회 교류로 확대
“미국에 왔으면 미국인들과 잘 교류하면서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물론 한인들과도 서로 잘 지내야하지만 미국인들과 잘 지내는 것이 바로 주류사회 진출입니다”
이러한 그의 생활 철학을 반영하듯 그는 이어서 1984년 ‘6.25 참전 미국용사들을 위한 위로행사’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최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명단을 얻는데 무려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보낸 끝에 간신히 행사를 진행하면서 그 당시만 해도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한 조그마한 나라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참전용사들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솟아났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이 자비를 들여 베푼 김 회장의 보은잔치에 감격했음은 물론이다. 이 행사는 입소문을 타고 1986년에는 주월 총사령관과 미 육군 참모총장을 지낸 웨스트 모어랜드 장군이 참석하기도 했다.
입양아와 참전용사들을 위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2001년에 한국에서 헌신적으로 선교활동을 하다 은퇴해 지금은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는 벽안의 선교사와 목사들을 위해 역시 ‘위안의 밤’ 행사를 마련했다.
이처럼 한국과 미국의 민간 차원의 교류를 김 회장이 사재를 털어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소문이 나자 한국에 나가면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었다고 한다.
■ 정직이 최선의 방책
1934년 평양 출신으로 동국대를 졸업한 뒤 1965년 도미한 김원보 한미문화협회장은 부인 킴벌리 여사와의 사이에 안과의사인 딸 줄리(45)와 LA 통합교육구에서 커리큘럼 담당 스페셜리스트로 일하는 아들 스티브(41)가 있다.
부동산 비즈니스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김 회장은 자신의 부를 미국사회와 한미관계 발전을 위해 환원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자신이 평생 해온 행사들을 2세가 되었든 누군가가 승계해서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김원보 한미문화협회장은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며 “올해 11월 마지막으로 입양인 행사를 치른 후 남은 여생을 아내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실 세계 7대 불가사의와 3대 폭포, 3대 미항, 세계 2대 휴양지 등을 다 돌아봤을 정도도 여행매니아이다. 현재까지 돌아본 나라만 80여개 국가인데 앞으로 100여개 이상의 국가를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회’ 준비위원으로 활약한 그는 주지사상을 비롯해 조지 부시대통령 공로상, 국제라이온스협회감사장 등 많은 감사표창을 받았고, 한국 정부로부터는 1985년 대통령표창과 2004년 대한국민 국민포장을 받았다.
<박흥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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