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전 언론인)
최근 한국에선 신경숙 소설가의 표절시비가 일었다. 신 씨 표절 의혹은 1999년에 처음 나왔다고 한다. 컴퓨터와 전자매체의 일상화로 종이책과 신문 등 인쇄매체가 사양길에 들었다지만 한 자 한 자 자신이 직접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 전문가들이 쓴 글쓰기 노하우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흔히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 좀 해보면 어떤 언어이든 우리 모두 어려서 듣고 따라 하며 배운 게 아닌가. 그렇다면 언어를 배워 사용한다는 사실부터가 표절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언어뿐만 아니라 영어로 ‘Practice makes perfect’라고 하듯이 오랜 연마와 연습을 통해 어떤 일에서든 달인과 명인이 될 수 있지 않든가.
어려서부터 품게 된 의문이 있다. 글이란 왜 꼭 종이에다 연필이나 펜 또는 붓으로만 써야 하나.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다짐하기를 차라리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도 실감나는 인생이란 종이에다 삶이라는 펜으로 사랑의 땀과 피와 눈물이란 잉크를 찍어가며 써보리라고.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삶을 결코 말이나 글로 때우면서 사는 흉내만 내지 않겠노라고.
또 어려서부터 영웅전, 위인전, 소설책 혹은 영화를 읽고 보는데 만족치 않고 나도 책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들처럼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리라. 아니 그보다는 소설이나 영화에도 없는 나 고유의 실제 스토리를 엮어가며 살아보기로 작정했었다.
그래서였을까. 대학 다닐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동기동창생으로 인하공대 학생회장이던 친구가 하루는 제가 쓴 장편소설이라며 읽어보라고 해서 읽어보니 나를 주인공 모델로 쓴 것이 분명했다. 제 여동생과 나를 결혼시키려고 했던 친구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군에 있을 때 펜팔로 사귀던 아가씨는 나를 모델로 쓴 단편소설 ‘푸른 제복의 사나이’로 신춘문예에 입선했었고, 헤어진 지 25년 만에 뉴욕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나 재혼해 10개월을 같이 사는 동안 또한 나를 모델로 장편소설 ‘꽃을 든 남자’ 를 썼다.
설혹 삶 자체가 꿈꾸듯 하는 환상이고 환영이라 하더라도 픽션이나 예술이란 삶과 자연을 모방하는 표절행위로서 실물의 그림자에 불과하리라. 그렇다면 우리가 실물을 제쳐 놓고 그 그림자를 쫓아가며 허깨비를 실물보다 더 애지중지할 일 아니리라.
이런 뜻에서 ‘작가는 단순한 자연인이 아니다’란 주장은 자연인들처럼 삶에 열중하지 않고, 사는 시늉만 하면서 마치 문화적인 특권층 귀족이나 된 양 행세하는 행태라고 지탄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독일의 시성(詩聖)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가 설파했듯이 “행위가 전부이고 명예나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니다. (The deed is everything, the glory na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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