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기<의사>
모택동과 이승만은 역사성과 정치체제가 다른 두 나라의 인물이기에 단순 비교가 어렵고 더욱이 누가 누구보다 수만 배 잘못이 크다거나 작다는 숫자적 인물 평가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승만의 행적이다. 이승만은 친일청산에 실패했고, 국방을 소홀히 해 북한 남침을 허용했으며(대통령 취임 시 선서한 책임 회피) 반민주적 장기독재와 3.15 부정선거로 4,19의거에 의해 쫓겨났다. 이승만은 사명감이 없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독재자였음이 밝혀지고 있다.
문제는 지금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강국과 민주국가가 된 것은 그의 공이 크다는, 이승만 당시 한국은 최빈국이었고 독재국가였는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년 만에 경제 강국과 민주국가가 된 것이 이승만의 덕이라는 논리다.
세상을 떠나면 독재자가 민주인사로 변하는 음덕이 있는 것인가. 프랑스의 자유사상이 루이 14세의 덕이라고 말하는 소리로 들린다. 4.19 정신이 훼손되는 듯하다.
1950년 6월27일 밤 정부 발표문이 서울 방송국을 통해 들려왔다. ‘정부의 대통령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서울을 사수키로 했으니, 국민들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미 6월27일 새벽 2시경 특별열차 편으로 비밀리에 남하했다.
몇 개월 뒤 환도 후 국회대표들이 이승만에게 ‘국민이 공산당에게 고난을 당했고, 특히 서울사수 약속을 어겼으니 대통령으로 사고할 것’을 건의했으나 이승만은 거절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공정한 평가가 있을 수 없으며 자식들을 버린 사람은 아버지로 대접할 수 없다.
세조는 세조일 뿐이다. 역사는 그토록 편리한 내용으로 고칠 수 없다. 이승만이 40년 동안 미국서 독립운동을 하고 프린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영어를 잘하는 미국신사임을 기념하겠다면 그것은 역사 밖이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9년 한국에 특사를 보내 이승만 대통령이 더 이상 통치하기 어려운 건강문제에 직면했고 30대 비서 박찬일과 자유당 일부 관료에 의해 국사가 좌지우지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적고 있다. (한국일보 2015년 7월23일 A8면) 이승만이 1948년 대통령 취임 시 74세였고 1960년 4.19의거로 정계를 떠날 때 8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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