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라<첼리스트>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맨하탄의 Museum of Modern Art 에 다녀왔다. 양 대전의 충격이 미술에서 어떻게 반영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대상을 그대로 표현 하는 순수 사실주의에서 점차로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으로 관점이 바뀌면서 형식과 전통을 던져버리고 추상주의의 궁극에 까지 이르게 된 현대 미술은 2차 대전을 전후하여 더더욱 가열차게 더욱 과감하게 전통적 미학으로부터 탈피해 나갔다. 사실, 더이상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자신이 없었던 게다.
그곳에 전시 되어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1946년 작 “Painting” 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환멸, 그리고 그 앞에 정육점의 고기처럼 숙명을 내어 맡길 수 밖에 없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한가로이 관람하는 듯한 형상도 등장한다. 과연 2차 대전에 대한 치열한 고발이다.
나는 올 여름 American String Teacher Association 에서 주최하는 Chamber Music Institute 에서 18세기 고전주의 작품부터 21세기 현존 작곡가의 곡까지 7곡의 피아노 삼중주곡 들을 해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쇼스타코비이의 삼중주 2번은 연주가의 입장에서도 연주해 내기에 정서적으로 힘겨운 작품이었다.
1944년, 2차 세계 대전 종전을 1년 앞두고 쓰여진 이곡은 20세기의 전체주의 그리고 파시즘, 대량 학살에 대한 묘사가 들어 있는 곡이다. 작가의 눈에 비친 미치광이의 시대를 묘사한 듯 전곡을 지배하는, 몰인간적이며 기계적인 그래서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반복적 리듬이 전체를 압도한다.
스탈린 소비에트의 인간군상을 반영하듯 기계적이면서도 희화적인, 통제된 인간의 획일화된 움직임을 보는 듯한 무시무시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전개는 놀랍게도 마지막 단 한번 등장하는 따스한 화음으로 그 끝을 보게 된다.
희망을 말할 수 없는 시대와 처참한 인간 군상의 악의 현실을 끊임없이 나열하다 작가는 아마도 마지막 하나의 화음을 통해 희망이라고 외쳤을지 모르겠다.
2차 대전 종전 70년, 인종 청산, 대량학살은 가해자의 끝없는 사죄와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넘어 갔다. 그리고 대한의 광복 역시 70년을 맞이하였다. 허나 지독하게 유린당한 조선 백성의 한이 아직도 다 풀리지 못한 이 비통한 현실 앞에 군국주의의 망령은 여전히 침략자의 미소에서 스멀거린다.
가뜩이나 과학만능주의와 인문학의 몰락 앞에서 주눅 들어있는 현대인의 가녀린 정신은 힘의 논리에서 자본의 논리로 표피만 바꾸어 쓴듯한 악의 세력을 노려보며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철학도 종교도 힘을 잃어가는 이 시대에 기댈 곳은 어디인가. 그나마 예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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