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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하이츠가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네이키드 카우보이스’와 셀피를 찍고 있다.
금년 초 에릭 하이츠의 삶은 바닥을 쳤다. 디스크자키, 로드매니저, 텔레마켓터, 피자 배달, 바텐더 등으로 쉴 새 없이 일해 왔던 보람도 없이 나이 40에 최악의 상황에 처한 것이다. 직장도, 차도, 집도 잃고 콜렉션 에이전시에 밤낮 없이 시달렸으며 지난해 7월 그를 떠난 아내는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다.
몸무게는 무려 567파운드로 불어났다. 그는 스스로에게 양자택일을 하라고 다그쳤다 : 인디애나 주 댄빌에서 부모 집에 얹혀살다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삶과 결혼생활을 구하기 위해 무언가 과감한 일을 시도할 것인가. 그는 위장절제수술도 생각했다. 그러나 프로클레이머스의 히트곡 ‘아임 고너 비 (500마일즈)’를 들으면서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1988년에 대단히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 500마일을 걸어가겠다고 맹세하고 있었다. 하이츠는 어마어마한 체중에 더해 줄담배를 피어대는 골초인 자신의 상태로 500마일 걷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전거로 갈 수는 있지 않을까,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3,000 마일 이상도 갈 수 있을 거야, 전국 곳곳도 구경하고, 살도 빼고, 대륙횡단기 출판 계약도 맺고, 아,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가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자전거로 미 대륙을 횡단하는 계획은 이렇게 그의 상상 속에서 익어갔다.
금년 3월 그는 ‘뚱보 미국 횡단하다(Fat Guy Across America)’라는 블로그를 개설했다. 체력훈련도 시작했다. 그리고 떠나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그녀가 반할만한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못미더워 했다.
그는 17달러를 주고 친구에게서 중고 몽구스 산악자전거를 샀다. 자전거 테스트 드라이브를 나갔는데 100야드도 채 못가 숨이 차서 주저앉았다.
6월7일 자신의 대륙횡단 기금모금을 위해 ‘GoFundMe’ 어카운트를 개설했고 그 다음 주에 아버지가 그를 매사추세츠 주 해안가 동네인 팔머스까지 자동차로 태워다 주었다. 중년의 아들을 길 가에 내려놓으면서 노년의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자전거에 매단 트레일러에 텐트와 식량 등 300파운드의 물품을 싣고 그는 대륙횡단 길에 올랐다.
가며 쉬며를 반복하며 4개월이 지나 뉴욕에 도착한 그의 체중은 출발 때보다 70파운드 줄었다.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현재 2만3,000명이나 된다. 악플러도 늘어났다. 그의 느린 일정을 지적하며 대륙횡단을 사기라고 의심하는가 하면 그를 ‘디지털 거지’라고 욕하는 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겨울이 오는데 하이츠는 결코 횡단을 마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사기다, 아마 지금까지도 차를 타고 다녔을 것이다…”라는 악플도 달렸다. 그는 “무슨 말이냐? 내가 사기를 치려고 했다면 5마일이나 10마일이 아닌 30마일을 달렸다고 했을 것이다. 사기라면 지금쯤 횡단을 마쳤다고 했을 것이다. 난 뚱뚱하다, 그래서 느리다. 겨울이 오면, 뭐, 겨울이 오는 거지”라고 대꾸한다.
자전거 여정은 여름에도 쉽지 않았다. 진드기, 거미와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털 복숭이 커다란 들 고양이가 달려드는 바람에 한 여름 밤에 텐트를 꽁꽁 잡아매야 했으며 까마귀가 비프저키 한 봉지를 채 간 적도 있었다. 길 가에 누워 잠깐 쉬고 있는 그를 보고 심장마비를 일으킨 줄 오해한 행인이 신고하는 통에 경찰이 달려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은 더 많았다. 전당포 주인에게 피자와 음료수를 대접받았는가 하면 중고 자전거가 주저앉은 로드아일랜드에선 한 교회가 뒷마당에 텐트를 치도록 선처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면서 한 바이크숍으로 부터 튼튼한 GT 자전거를 기증받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미디어의 관심은 대단하다. 그의 스토리는 각 지역의 TV와 신문, AP통신, 피플 잡지, USA투데이 등에 소개되었고 인터넷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뉴욕에 도착한 그를 요란스럽게 맞은 것도 미디어였다. 다수의 TV와 신문 기자들, 뉴욕시립대학 저널리즘 전공 대학원생들에 더해 타임스 스퀘어의 관광객들과 네이키드 카우보이스까지 가세해 온통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런 서커스는 예상도 못했다는 그는 “난 책 출판 제의로 선금을 받아 횡단 경비로 쓸 수 있기를 바란 것뿐인데 사람들은 내가 유명세를 노린다고 오해한다”고 말했다.
8명의 텔레비전 프로듀서들이 연락해 와서 그중 2명을 만났으며 논픽션 프로그램 디렉터 출신인 래리 랜즈먼과 ‘팻 가이 어크로스 아메리카’ 리얼리티 쇼를 만들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뉴욕에서 그는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 아내 앤지(37)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빨간색 폰티액 그랑프리를 타고 온 앤지는 그의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리다 일사병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후엔 자동차를 타고 그를 따라오고 있다.
하이츠는 자신을 ‘뚱뚱한 포레스트 검프’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뚱뚱한(fat)’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그는 “그 표현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난 뚱뚱하다, 그러니까 뚱뚱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에 대해 비위를 상하게 할까봐 너무 걱정하는 것이 이 나라의 문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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