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이번 한국방문 여행 의 하이라이트는 돌아오기 직전 맨 마지막 일정의 고등학교 홈 커 밍 행사였다. 드디어 올해 우리 기가 졸업한지 30년이 되어 홈 커밍 을 하는데 특별 연주까지 하게 돼 서 더욱 두근대는 마음이었다.
“어머, 너 정말 그대로구나 하나 도 안 변했어!” “무슨 말이야, 너는 예전보다 더 예뻐졌구만 호호호 지지배 네가 더 예뻐 넌 진짜 그대 로다.“ 마치 여고생처럼 까르륵 꺅 꺅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했다. 음 악, 미술, 무용을 전공하며 멋진 미 래를 꿈꾸던 17살 소녀들이 30년 의 세월이 비껴간 모습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서로가 정말 하 나도 안 변했다고, 더 예뻐졌는데 늙지 않았다고 굳게 믿으며. 사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정 말로 모두 그때 그대로였다. 예술 고등학교는 그래도 명색이 남녀공학이라 동창회장도 사업하 는 남학생이었다.
여러 친구가 애써 준 덕분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이루어진 행사에는 은사님들이 초대 되었고 회장 지인인 이홍렬 씨 사 회로 축하 연주, 화가 친구들의 작 품 전시, 옛날 사진 감상 그리고 넘 쳐났던 경품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빛났던 건 그리운 친구들의 얼굴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과거 모습이 겹쳐 보 이며 다시 17살로 돌아간 것 같이 반갑고 또 반가웠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을 오락가락하던 강렬하고 짧았던 만남을 아쉬워하 며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왔다. 가을이 되자 반가운 손님들이 미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친구들 이 각자의 사정으로 동부를 방문 했고 뉴저지. 뉴욕. 버지니아에서 홈 커밍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듯한 감격적인 만남이 또 이루어졌다.
겨우 흥분을 가라 앉힌 우리는 찬찬히 서로 들여다보 며 비로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참 동안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니 어느덧 얼굴에서 우리들의 부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거 못하게 한다고 속상해했던 천방지축 우리가 아이들을 잔소리 하며 기르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고 자녀를 올바르게 교 육하려고 내리는 수많은 결단들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지 알게 되어 감사했다. 이렇게 우리의 역사적인 만남은 부모님을 향한 한없는 감사 로 끝을 맺었다.
올해도 아이는 학교로 떠났다. 섭섭하고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우리 엄마도 나 시집보내고 그랬겠지. 나 미국 보내고는 더 그러셨겠지. 30년 전 소녀였던 나도 이제는… 엄마다.
배경미 (오보이스트/ 릿지우드)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