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왕덕복(왼쪽)씨에게 1987년 6월6일 직접 써준 ‘대도무문’이 산왕반점에 걸려 있다. 오른쪽은 동생 덕정씨.
그 곳에 ‘대도무문’ 있다
SF 산왕반점 왕덕복•덕정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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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베이지역으로 외유 온 한국 정치인들 사이에서 내년이면 개업 40주년을 맞는 샌프란시스코 ‘산왕반점’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었다. 현재 왕덕복(70)씨는 은퇴하고 동생인 덕정(63)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특히 덕복씨는 김영삼 대통령뿐만 아니라 고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후원하면서, 양 김 대통령의 취임식에 초청을 받는 등 각별한 관계를 쌓았다.
고인과의 첫 인연은 1982년 김 전 대통령이 SF에 왔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80년대 중반쯤 제가 하는 식당에도 오셔서 바로 여기 이층에서 식사를 하셨죠. 그때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후 상도동에서도 3차례 김 대통령을 만났다.
산왕반점에 걸려 있는 김 대통령의 친필 ‘대도무문’(큰 도리나 정도로 가면 거칠 것이 없다)도 상도동을 방문 했을 때 받았다. 1987년 6월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있다. 1993년 대통령 취임식에 북가주에 살고 있는 김 대통령의 둘째 딸 혜정(61)씨가 참석을 권유, 가기도 했다. “그게 그분과의 마지막 만남이었죠. 이번 장례식에도 혜정씨가 와 달라고 했는데, (작년 5월 심장수술을 받아서) 몸이 여의치 않네요. 제가 만난 그분은 대한민국을 사랑한 민주 투사였습니다. 아직도 귓가에 ‘니 언제 왔노. 사업은 잘 되나’하는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1975년 1월 박정희 대통령 유신반대개헌운동을 위해 SF를 방문할 당시 49세의 고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26세의 애국청년이었던 허건씨.
“한국 민주화위해 투쟁하겠소”
허건씨, "SF는 고인에게 특별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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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특별했던 도시였다.
1975년 1월 민주회복청년동지회 허건(67) 당시 회장과 송성근 코리아저널 발행인 주도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초청했다.
당 차원의 유신반대개헌운동이 SF에서 첫 시작됐다.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하셨던 말씀이 생생합니다. ‘한국에서 열심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겠소. 그러니 허 동지도 미국에서 열심히 투쟁해주시오’” 1978년 노승우 전 동아일보 SF지사장 초청으로 김 전 대통령이 SF에서 시국강연을 했다. 이어 198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SF를 방문, 또 한 번의 시국 강연회를 열어 1,000여명의 한인들이 몰렸다.
“그분은 항상 연설에서 SF를 가리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혼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 흥사단과 장인환•전명운 지사의 혼이 깃들인 장소’라고 하셨죠” 이후 김 전 대통령은 한인회관을 건립하는 데 보태라며 5만달러를 한인회에 전달하는 등 SF에 애정을 쏟았다. 대통령 재임과 퇴임 후에도 SF를 찾을 정도로 고인에게 SF는 각별했다.
허씨는 최형우 전 내무장관의 특보로 한국에 있으면서 고인을 수십여 차례 만났고, 2008년 세배가 마지막으로 본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23일 SF총영사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허씨는 망명록에 “대도무문을 이루셨습니다”라고 적었다.

1980년 가택연금을 당했을 당시 상도동을 찾아갔던 임승쾌 현 크리스찬타임즈 발행인에게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써준 휘호.
“함께 ‘극세척도’ 외쳤지요”
임승쾌 크리스찬타임즈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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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년휘호로 고인은 ‘극세척도’(세상을 극복해 새 길을 개척해 나간다)를 적었다. 하지만 이 휘호가 언론과 대중에 알려지기 전 1980년 신군부에 의해 2년 간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상도동을 찾아가 이 휘호를 받은 언론인이 있었다. 당시 한국일보 SF지사에 기자로 일했던 전 본보 편집국장 임승쾌 크리스찬타임즈 발행인이 출입이 통제돼 찾아오는 객이 없던 서슬 퍼런 시절, 그를 만났다.
그 때 김 전 대통령이 써준 글이 ‘극세척도’였다. 1970년 한국의 CBS 정치부 기자로 신민당 출입과 1975년 고인의 동남아 순방에 취재기자로 동행했던 깊은 인연이 있었다. “자택에서 그분이 ‘이제 정치 그만둬야겠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러면서 ‘극세척도’를 써주시면서 ‘임승쾌 동지’라고 적으셨습니다.
헤어지기 전 손을 꼭 잡고 ‘극세척도’를 외치던 기억이 나네요” 인연은 1993년 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임 발행인이 CBS 정치부 부장으로 한국으로 가면서 청와대에서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차 한국에 가면서 만난게 마지막이 됐다.
“그분을 생각하면 청와대 시절보다 투쟁할 당시 뚝심 있고, 꼬장꼬장했던 모습, 그때가 가장 많이 기억에 또 가슴에 남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방문시 기자회견에서 취재를 하고있는 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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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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