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세배를 하고 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다. 새해가 되면 한 해 동안 잊고 살았던 이들이 그리워진다. 그런 연유에서 연말연시가 되면 유난히 모임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추위도 잊고 따듯한 정을 나눈다. 특히 설날이 다가오면 한국인만의 특유한 정서를 느끼게 된다.
해외에 사는 우리로서는 친밀감과 소속감을 나누는 가운데 감회가 깊어지고 옛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더욱 소중하고 절실하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 새해가 되면 신문 기사 혹은 광고에 동문회 등 여러 단체들의 모임 알림난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그때마다 한국인의 끈끈한 정과 포근한 마음이 스며드는 내용과 사진을 보면 절로 동감이 간다.
지난 1월 30일과 31일 양일간 재미 동부지역 진주 중고등학교 동문회 설날 모임이 포코노에 위치한 리조트에서 열렸다. 정기 동문회 겸 설날모임으로 올해는 색다르게 1박2일 포코너 소재 이글 에스테트라는 펜션을 빌려 모이게 되었던 것이다.
펜션이라는 특성상 전체 장소를 우리 동문회 일행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전체 비용을 고려했을 때 오히려 가격이 저렴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음식을 우리취향에 맞게 알아서 준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밤새 지난 미주 동북부 동문회 26년을 회상하며 대화를 나눌 때 일부는 눈시울을 붉히기 까지 했다. 그리고 한국인 정서에 빠질 수 없는 윷놀이를 즐겼고 일부 회원들은 동양화 (?) 감상에 열중하기도 했다. 또 노래방 기구를 이용해 멋들어진 노래 솜씨도 뽐냈고. 하지만 무엇보다 기탄없는 담화를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자정이 지나 피곤해진 몇몇 선배들은 7개의 방에 각자 알아서 들어가 편히 쉬었다.
참석자 모두들 이런 자유로운 공간이 존재해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계속 이어졌다. 이날 참석했던 후배중 하나가 오기 전부터 감기몸살기가 있다고 했고 펜션에 들어 와서도 어두운 안색으로 방에 들어가 누워있어 모두가 걱정을 하였는데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고 하는 말 "집에 이대로 있었으면 늘어졌을 텐데 같이 먹고 즐겁게 쉬니 금방 좋아 졌다.
정말 동문회 참석하기를 잘했다"고 해 모두를 기쁘게 하였다. 정말로 얼굴 혈색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아보였다. 이어 한국인 정서에 빠질 수 없는 화투(?) 판에서는 평소에 순하고 너그러운 언니가 사나운 인성으로 돌변하고 매번 올 때마다 힘없고 지쳐 보이는 후배가 그때만은 날카롭고 애리한 눈빛으로 모두를 제압하는걸 보면서 바로 이것이 우리가 소중히 간직했고 미국 생활에 늘 그리던 한국 정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동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긴 겨울밤이 오히려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이 날만은 왜 그리 해가 일찍 뜨는지. 처음 시도였지만 장소도 시간에 쫒기며 다른 일에 구애 받지 않아 진정으로 서로를 소통하고 추억을 만든 행복한 기억이라고 모든 동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할 때 뿌듯한 기쁨을 만끽했다. 특히 가장 연로한 왕 선배께서 다음부터 찔끔찔끔 짧게 여러 번 만나는 것 보다 이런 식으로 한번을 만나도 화끈하게 만나자는 부탁 아닌 명령을 하셨을 때 모든 후배가 머리를 조아리며 행복해 했다. 이어 다음 선배가 이번 모임에서 너무 많이 웃어 엔돌핀을 넘치도록 받았다며 “리바이벌!” 하고 외치셔서 모두가 함께 “리바이벌”을 합창한 후 점심을 먹고 각자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도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외로운 이국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이런 새로운 시도와 체험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하면서대 동부지역 진주 중고등학교 동문회가 설립한지도 벌써 4반세기가 넘은 26년째, 해마다 서너 차례 모임을 갖고 즐거운 일 슬픈 일을 함께 나누었다.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자발적 모임에서 시작되어 어려운 일 궂은 일이 있을 때 말없이 서로를 아끼며 말없이 돕고 산지 벌써 26년이 흘렀다.
새파란 청춘이었던 많으신 이들이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를 듣는다. 이들 동문회 선배들은 모임에 참석할 때 첫마디가 "내가 언제까지 올려냐? 그러니 니들 세 번 모이면 한 번은 꼭 껴줘라” 하다가 말 바꿔 “다섯 번 만나면 두 번은 불러줘" 라 투정을 하신다. 그만큼 만남이 애틋하고 훈훈하다는 뉘앙스를 전하고 싶으신 게다. 그리고 점점 어두어 지는 시력 때문에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모임이 부담스럽다고 말씀을 하실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환할때 와서 환할 때가면 참석하기가 참 편할 텐데... " 그래서 어른들의 이 불평 아닌 불평으로 만남을 위해 새로운 장소를 물색하는 동기가 되었고 색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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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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