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나” 4학년인 제 동생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물어보면, 이렇게 답을 할 것 같습니다. 어린 초등학생인 동생에게는 무조건 가족은 같이 사는 사람들로 여겨집니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귀여운 동생, 사랑스런 엄마, 자상하신 아빠 하지만, 저에게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그렇게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부모님도 한국에서 태어나시고, 한국에서 자랐습니다.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은, 제가 4살 때 아빠가 MIT에서 직업을 잡아서 이사 오게 된 것입니다. 아빠가 혼자서 보스턴에서 1년 정도 살다가, 엄마와 함께 저는 비행기 타고 미국으로 왔습니다. 2년 후, 제 동생이 태어났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모두 MA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이사를 2번 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크게 우리의 생활이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미국으로 오기 제일 힘들었던 이유는 제 사촌을 떠나야 됐다는 것입니다. 제 사촌은 저와 동갑이고, 우리는 같은 빌딩에서 살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2층, 우리가족은 1층, 사촌과 고모, 그리고 고모부는 3층. 우리는 유치원도 함께 다니고, 함께 놀고, 모든 것을 같이 했습니다. 저와 제 사촌은 정말로 단짝 친구였습니다.
아무리 어렸어도, 제 친구, 그리고 제 사촌을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이를 먹고, 더 커서 돌아보니, 저의 슬픔과 아쉬움은 제 부모님의 아쉬움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족, 친구, 집, 동네, 아는 것을 모두 놓고 온 제 부모님께서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거의 12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한국으로 2-3년씩마다 갑니다. 어렵습니다. 2-3년에 한 번씩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일 수가 있는 지 저는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국을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고모, 고모부, 이모, 이모부, 사촌들을 보면 바로 알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마음에 너무 사랑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촌을 떠나서 미국으로 왔을 때에는 아쉬웠지만, 한국으로 가서 얼굴을 보면, 어렸을 때처럼 단짝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족 4이 지구 반대쪽에 있다는 일은 정말 힘든 것입니다. 생일날 때도 얼굴을 보지 못하고, 가끔씩은 제 사촌을 보고 싶어서 부모님께 , “우리 한국 또 언제 가요? 우리 빨리 가요.” 라고 조를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쉬운 기분을 통해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은 꼭 자주 봐야 가족인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그 사랑과 행복이 있는 사람들, 그들이 가족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촌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 가족이 되 주어서 너무나 고마워. 너는 언제까지나 내 단짝 친구일거야. 사랑하고, 한국에서 멀리 있어도, 나는 너를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어. 나에게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너무나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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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지 천주교 한국학교 9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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