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낮게 구름이 내리 깔리더니만, 오후 들어서 어김 없이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생일파티가 아니니 별 상관 없겠지 하고 길을 나섰는데, 왠걸, 평소에 20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이 곳곳에 생긴 사고로 꽉 막혀있었다. 생일을 맞은 둘째 아들은 영 조바심이었다. 거의 1시간 걸려서 약속 시간 5분 전에 도착한 볼링장에는 다행히 아직 아무도 나타나지 않은지라 “휴”하고 한숨이 놓였다.
늘 학업에 짓눌려 지내던 대학원 생활, 뒤늦게 시작한 신학공부와 별로 풋풋하지 않은 불혹(不惑)의 신출내기 전도사 시절, 부교역자로 작은 교회를 섬기던 기간, 그렇게 두 아들 녀석들과 아내는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꺾어 버린 가장의 삶에 함께 하느라 유난히도 고달픈 생활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씩씩하게 잘 버텨왔다.
두 놈 다 돌잔치를 해주지 못했다. 큰 녀석은 그래도 장남이라 대접을 받아서 5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불러 생일잔치를 해주었는데, 그 뒤론 눈치 보며 물어봐도 “난 생일파티 같은 거 필요 없는데”하고 그런 하찮은 일에 왜 눈치 보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런 첫째에 길들여져 둘째는 9살이 되도록 한 번도 파티를 안 해줬더니, 이 녀석이 거의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다. 그래서 올 해 초 9살 생일에 볼링장 생일파티가 성사되고야 말았다.
초대 받은 8명의 친구들 가운데 제 시각에 도착한 아이들은 단지 3명뿐. 나머지 아이들은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30분, 혹은 40분, 심지어 가장 늦게 도착한 아이는 무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볼링 레인은 2시간 기준으로 대여된 것이기에 친구들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다 도착하지 못했어도 일단 게임을 시작해야지 안 그러면 고스란히 할당 받은 시간을 까먹을 판이었다.
그런데 둘째 녀석은 그 날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이는 자기 차례가 되어서 공을 굴리더니만 점수도 확인하지 않고 족히 20미터는 떨어져 있는 볼링장 현관으로 냅다 뛰어갔다. 무얼 하러 갔나 살펴보았더니, 초대 받은 친구들이 혹시라도 도착하나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야, 재서야, 네 차례야”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다시 뽀르르 달려오더니만 아무렇게나 마구 공을 굴리고는 역시 점수도 확인하지 않고 다시 그 자리로 뛰어갔다. 마지막 오기로 한 친구가 1시간 뒤에 도착할 때까지 녀석은 줄곧 그랬다. 전날 밤, 난생 처음 하는 생일파티에 흥분이 되어서 잠도 못 이루고, 10번도 넘게 잠을 깨던 녀석이었다. 헌데 정작 파티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이 가지고 온 선물도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일 케익과 피자도 녀석을 흥분시키지 못했다. 아이의 관심은 오직 한 가지였다. “오기로 한 나의 친구들이 언제나 도착할 것인가?”내가 감동으로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은 자녀 양육의 소소한 깨달음이 다시 한 번 촉발시킨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다. 그 분은 우리 자녀들에게 은혜의 잔치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어쩌면 매 주일 예배가, 때때로 마련되는 특별집회가, 소그룹 모임이, 중보기도 모임이 그런 잔치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신다. 9살 철부지가 저토록 친구의 부재로 인해 발을 동동 구른다면, 우리의 창조주 되시고 신실한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마음은 더 말해 무엇 할까? 그런 거구나. 잔치를 베푼 자의 마음은 온통 오기로 한 사람들에게 향하고 있는 거로구나. 우리 교회도 돌아오는 주일에 처음으로 성경공부 반이 개설된다. 어느새 나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은 닮아 있어서 오기로 한 사람들, 꼭 와야만 하는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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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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