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 고아’와 은인 아들의 만남
▶ 고 블레이즈델 대령 10주기 추모식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 미 공군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 10주기 추모식 장면.
"제 생명의 은인이시고 한국전쟁 고아 1천여 명의 진정한 아버지이신 미국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님 영전에 고맙다는 절을 올립니다."
1950년 12월 블레이즈델 대령에 의해 서울 보육원에서 김포공항으로, 다시 제주도로 피란해 가까스로 구출된 병진(당시 4세·황선민) 스님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블레이즈델 10주기 추모식 및 국제학술 포럼'에서 "아버지 고맙습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병진 스님은 1962년 15살의 나이에 출가해 탱화의 대가가 됐다. 1950년 9월 아버지가 북한군에게 총살당하자 어머니는 아들을 서울에 있는 한국보육원에 보냈다.
그는 "지난 2001년 50년 만에 아버지(대령)가 한국에 오셨을 때 재회할 수 있었다"며 "여전히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저를 대해주셨고, 저희를 위해 늘 기도했다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먹먹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같은 보육원에 있다가 제주도로 피란해 살아난 임경애(당시 10세) 영락교회 권사는 "58년 동안 '6.25 전쟁 때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피란 갔다'는 말을 했더니 사람들이 '그때 무슨 비행기냐'라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했다"며 "1천 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살린 아버지의 숭고한 업적이 이제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오다가 부모와 떨어져 전쟁고아가 된 그는 병진 스님과 같은 보육원에 입양됐다. 그는 "50년 뒤 블레이즈델 대령에 의해 제주도로 구출됐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지금도 2001년 아버지와 만날 때를 생각하면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고 뛴다"며 울먹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령의 장남 카터 블레이즈델 씨는 "어릴 때 저는 아버지의 한국 전쟁 참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폐허가 된 서울 거리에서 1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출했고, 그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며 "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미국 공군이 2000년 12월 공군 잡지에 한국 전쟁 50주년을 기념해 그 이야기를 다시 실으면서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아버지가 펼친 이른바 '유모차 공수작전'이 한국 역사에 기록되기를 소망한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 제5공군사령부 중령이었던 고인은 서울시청의 도움으로 보육원을 차리고 1천명이 넘는 전쟁고아를 보살폈다. 1950년 12월 중공군이 평양을 탈환하고 서울로 진격해오자 그는 14대의 해병대 트럭을 이용해 1천69명의 고아를 김포공항으로 이송한 뒤 제주도로 무사히 대피시켰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대령으로 예편했고, 2007년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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