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석 목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소설 ‘대지’의 작가인 펄 벅이 1960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어느 날 황혼이 지는 시간에 경주의 시골길을 지나면서 한 농부가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소달구지에는 가벼운 짚단이 실려 있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농부는 자신의 지게에 따로 짚단을 지고 가고 있었다.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서양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당연히 이상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힘들게 따로 짐을 지고 갈 것이 아니라 달구지에 짐을 실은 다음 농부도 타고 가면 훨씬 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펄 벅 여사가 통역을 통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을 때 농부의 대답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저도 일을 했지만 소도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했으니 짐을 서로 나누어져야지요.”
펄 벅은 농부의 대답에 감탄하면서 이렇게 얘기를 했다.
“나는 저 장면 하나로 한국에서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습니다. 농부가 소의 짐을 거들어주는 모습만으로도 한국의 위대함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본래 우리 민족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잘하는 민족이었다. 바로 이것이 반만 년의 역사 가운데 수많은 외세의 침입을 받으면서도 이겨낼 수 있었던 저력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본다.
펄 벅이 목격할 수 있었듯이 짐승에게까지도 배려할 줄 아는 미덕을 가진 민족이 우리 민족이었다. 이웃이 당하는 어려움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도와주는 민족이 아닌가! 내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할 줄 아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 지배하는 것 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 라든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지나치게 이기적인 생각들이 한국사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사회 전반에 걸쳐서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가운데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맞으면 언제라도 들고 일어서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나 어떤 조직 또는 단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자세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자연이나 모든 다른 피조물에 이르기까지 배려하는 자세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함부로 개발해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가 팽배해 있다. 자연을 아끼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펄 벅 여사가 만났던 시골 농부의 이야기는 점점 배려를 잃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강한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이웃에 대한 배려의 결과는 우리가 누릴 보상이기도 하지만 후손들이 누리게 될 보상이라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명약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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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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