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2일 유명을 달리하신 故 정준식 (요한)님에 대한 비보를 접하고 새삼 인생무상을 통감하면서 기도와 함께 추모의 정을 나누고 싶다. 고인은 졸수(90)를 눈 앞에 둔 1929년(당88세) 서울 태생으로 5남1녀 중 장남이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에 극진한 효행과 형제간에는 돈독한 우애로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데 최선을 다 하신 분이었다. 8. 15 광복 이후 어려웠던 과도기에 대학을 마친 후 주한 미 8군사령부 산하 야생곤충 리서치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수준높은 영어실력과 조예 깊은 보건의학 연구에 봉직하셨다. 특히 말라리아 내출혈 병에 대한 역학 조사는 한국 국립보건원에 매뉴얼로 보존돼 있을 정도로 높이 평가 받았다.
성혼 후 새 가정에서는 3남1녀를 둔 가장으로서 자녀에 대한 높은 교육열로 자녀들을 훌륭히 키우셨고 5명의 손주와 3명의 손녀, 9명의 증손자를 두셨으며 손자 중에는 의사, 부부 변호사까지 배출한 행복한 할아버지로서 뭇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고인이 출석하셨던 버지니아성당에서는 독실한 신자요, 초창기 하상회장으로서 많은 신도들의 사표와 귀감이 되셨다. 노인회 발전에 심신을 다 바친 공로는 성 정바오로 천주교회의 큰 업적이 되리라 믿는다. 또한 노년층에서 보기 드문 유창한 영어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뿐 아니라 음지에서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 교우들의 통역과 번역을 도운 음덕은 깊이 남으리라 믿는다. 사회적으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자하고 너그러운 덕성과 베푸는 사랑으로 기독교의 근본인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하시며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다. 이기심 없는 이타주의적 인덕과 적선은 후대에 남기신 위대한 유산으로 믿는다. 1977년 미국으로 이민, 어렵고 힘든 가운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셨다.
하지만 ‘만나는 자 언젠가 반드시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 ‘태어난 자 언젠가는 반드시 떠난다’는 생자필멸 (生者必滅)의 인생 철칙은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부디 하늘나라에선 주님의 은총 가운데 영생과 명복이 충만하시길 다시한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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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경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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