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색내기 지원이 데스밸리로 내몰아, 창업자금 일회성 그쳐, 2~3년차 기업지원 ‘나몰라라’
▶ 실적에 눈먼 대학, 업종 무관한 경진대회 떠밀어, 마케팅 수업은 창업 지원사업 노하우 가르치기 변질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17 글로벌 청년창업&스타트업 대전’을 찾은 청년 창업가들이 바이어들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
청년 창업가 김미현(28·가명) 대표는 지난해 서울 S대학에서 CEO를 위한 마케팅 수업을 듣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정부 창업지원사업 심사위원이라는 담당 교수는 커리큘럼과 다르게 각종 창업지원사업에 당첨되는 합격 노하우를 가르치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주요 기관별 심사위원 선정 절차, 증빙자료 제출 시 주의 사항을 비롯해 보고서에 사용할 어투(경어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며 “다른 대학에서도 정부지원과제 따내는 수업은 마찬가지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청년 창업가들이 벼랑 끝 신세에 내몰린 배경에는 본인의 책임 못지않게 부실한 지원체계가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자금 집행이나 창업 교육 등에서 내실보다는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청년들의 목소리다.
중소벤처기업부 ‘2017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 시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응답자의 67.4%가 창업자금 확보를 꼽았다. 이어 △창업 실패와 재기에 대한 두려움(27.4%) △창업 전반에 대한 지식·능력·경험 부족(23.2%) △창업준비부터 성공하기까지의 생계유지 문제(14.1%) 순이었다.
창업자금 측면에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회성 지원에 몰두할 뿐 2~3년차 기업을 위한 후속 지원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선풍기 제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실패했다는 박모(39)씨는 “정부로부터 1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받았지만 막상 사업을 해보니 이 돈으로 시제품 제작단계도 나아가기 어려웠다”며 “정부지원사업 대상자라도 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이 가능한 금액은 대략 2억원이 최대라 막상 최종 양산단계에서 추가 보완이나 아이템 변경 등 자금 수요가 발생하면 빚을 지거나 폐업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한다”고 설명했다. 창업을 장려하기 위해 각종 예산을 투입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돈이 필요한 시점에는 정부와 지자체 모두 뒷짐만 질 뿐 지원이 없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2017 창업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창업자의 82%는 자기 돈으로 충당한다고 답했다. 금융권 대출은 17.4%로 뚝 떨어진다. 반면 정부 융자와 보증, 정부출연금 및 보조금 비중은 각각 4.2%와 1.3%에 그쳤다.
청년 창업가들 사이에서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 공공 금융기관 역시 보수적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양대 기관이 명확한 역할 구분 없이 초기 창업자에 대한 보증에 나서면서 전체적으로 창업가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용보증기금에서 창업지원을 받았다는 한 창업자는 “(신보가) 보증금액을 사무실 월 임대료가 아닌 보증금으로 썼다는 이유로 약속했던 지원금의 3분의 1만 지급해 사업 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며 “신보 보증을 받으려면 기존 기술보증기금 대출부터 먼저 갚으라는데 매출도 제대로 없는 창업가가 어디서 갑자기 1억원 이상의 거액을 마련하겠느냐”며 하소연했다.
실제로 창업 3년 이내 기업 중 기술력이 뛰어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지원하는 신용보증기금 ‘퍼스트펭귄’ 사업을 보면 2014년 8월 도입 후 404개 기업이 선정됐지만 1차에 이어 2차 연도에도 지원받은 기업은 44개에 그친다. 3차 연도 지원 기업은 단 8개에 그쳤다. 보수적 집행으로 후속 지원에 인색한 것은 공공 금융기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영달 동국대 교수는 “개별 창업자에게 직접 지원하는 금액은 한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창업 기업을 양적으로 늘리려는 일회성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브증재단의 역할이 불분명해 총량 관점에서 청년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줄어드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실적에 눈먼 채 창업가 교육과 양성에 뒷전인 대학의 행태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3년간 창업을 준비하다 그만뒀다는 박모(36)씨는 “경진대회가 몰려 있는 5~7월에는 업종과 무관하게 IoT, 빅데이터, 드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한 달에 2~3회씩 떠밀려 나가 본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며 “서울시와 연계해 후속투자까지 해줄 수 있다고 참가를 권유했던 한 경진대회에서는 참가자 30명 가운데 20명이 같은 학교 학생이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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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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