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지내십니까 - 미국에 한국학 알리기 40여년,‘한국어 유창한 미국인’원조
▶ UCLA에 한국문명사 개설, 인문학 중심 한국학연구소 설립, “미국 한인 2·3세들, 한인으로서 자신만의 ‘자아상’ 갖길…”
존 던컨 UCLA 명예교수가 본보를 찾아 은퇴 이후 근황과 한국학 연구의 위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존 던컨(74) UCLA 명예교수는 ‘한국학의 대부’로 불린다. 그가 설립한 UCLA 한국학연구소는 한국을 제외하고 한국학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해외 최고의 한국학 연구기관으로 꼽힌다. 이는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가 불모지였던 1960년대에 한국사 연구의 길을 택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온 ‘벽안의 사학자’ 존 던컨 교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던컨 교수는 지난 1989년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가 된 지 30년 만인 지난 6월말 교수직을 은퇴했고, 8월에는 한국학연구소 소장직을 이남희 부교수에게 물려줬다. 은퇴 후에도 한국학 연구와 고전 번역, 세미나 강의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던컨 교수가 본보를 찾아 근황 인터뷰를 했다. 유창한 한국말로 “UCLA에 개설된 한국문명사 첫 강좌는 25명이 신청했고, 대부분 한인 학생들이었는데 2000년대가 되면서 비한국계 학생들이 65~75%를 차지했죠. 정원 270명에 달하는 인기 학과가 되었어요”라고 설명하는 던컨 교수는 ‘비한국계’라는 고급 단어는 물론이고 아내 유계실씨를 이야기할 때는 CC(캠퍼스 커플)로 만났다며 당시 유행어를 사용하는 등 ‘한국어 잘하는 미국인’의 원조다웠다. 인터뷰는 한 시간 내내 한국어로 진행됐다.
* * * * *
자신이 “애리조나주 깡촌 출신”이라고 밝힌 던컨 교수가 처음 한국에 간 건 지금으로부터 53년 전인 1966년이었다. 노던 애리주나 주립대에서 역사를 전공하다가 학비 마련이 힘들어 휴학을 한 뒤 입대, 1966년 주한미군으로 문산에 파병됐던 것이다.
베트남 전쟁터가 아닌 한국 파병의 안도감도 잠시,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주둔했던 미 2사단에 소속돼 서부 전선을 지키면서 1968년 1.21사태(청와대 무장공비 습격)부터 대규모 무장공비 침투사건까지 고스란히 겪었다고 한다.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한국의 자연, 그리고 한국인의 ‘정’에 흠뻑 매료됐다는 그는 제대 후 미국으로 돌아온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한국을 찾아 고려대에 편입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학 외길인생 40여년은 그를 ‘조선왕조’ 연구의 권위자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게 했다.
한국의 매력에 빠진 그는 미군 제대 직전 강만길 교수를 만나 고려대에 입학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부족한 한국어 실력 탓에 거절됐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애리조나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한국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한국인 특유의 ‘정’이 마냥 그리웠다고 한다. 귀국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한국학 공부를 결심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고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 실력을 키운 뒤 1970년 봄 고려대 사학과로 편입을 했다.
그가 고려대를 다니던 시절 한국은 김신조 사건 이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이유로 ‘국가안보 우선주의’가 선언돼 있었다. 노동조합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교련 교육이 실시되었다. 대학가에서는 3선개헌 반대, 교련 반대 등의 목소리를 높였고 군대의 정문 난입사건 등이 발생하는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며 학업을 이어가다가 고려대 1년 선배인 영문과 출신 아내 유계실씨를 만나 캠퍼스 연애를 했고 결혼에 성공했다.
던컨 교수는 1988년 아이다호주의 보이지 스테이트대 교수로 미국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3세대 학자의 첫 발을 디뎠다. 그리고 이듬해 아시아언어문화학부 교수로 UCLA에 합류했고 한국 문명사 강좌를 개설하며 한국학 연구의 풍성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1993년 12월 UCLA 한국학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존 던컨 교수다. 2001년부터 소장직을 맡아 한국학 연구는 물론이고 한국학을 전 세계로 전파하고 전문학자들을 배출해 전 세계 한국학 연구기관들에 학술 인재들을 공급해주는 ‘한국학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성장시켰다. 특히 UCLA 한국학 연구소는 한국 역사를 전공한 던컨 교수 덕분에 역사와 종교, 문화 등 인문학 중심의 한국학 연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위상을 자랑한다.
던컨 교수는 특히 19세기 말 격동기 한국 연구에 관심이 많다. 고려대를 졸업한 후 하와이대학원을 거쳐 워싱턴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고려후기와 조선초기 지배층의 지속성을 연구했다. 조선왕조의 뿌리를 고려왕조에서 찾으며 조선의 건국을 단순한 왕조교체로 보지 않고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로 인식해온 통설을 뒤엎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조선왕조의 기원’(The Origins of the Choson Dynasty)에서 던컨 교수는 고려-조선왕조 교체에 대한 핵심요지는 고려전기부터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의 완성으로, 고려의 중앙관료귀족이 지방의 귀족인 향리를 완전히 제압한 기나긴 역사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정치제도 연구를 비롯해 ‘대한제국기 근대화사업’(Reform and Modernization in the Taehan Empire), 유교정통론에 반박하는 ‘다시 생각하는 유교: 한·중·일,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Rethinking Confucianism: Past and Present in China, Japan, Korean, and Vietnam) 등의 저서와 편집서, 번역서 등이 다수 있고 논문은 30편이 넘는다.
던컨 교수는 “90년대 이후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 등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2000년대 한류 열풍이 미국과 아시아는 물론 중남미·유럽까지 확산하면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한류’를 언급할 때는 놀라움을 표했다. 그가 한국학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주로 외국인이 한반도 냉전체제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 한국학 연구는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며 최근 미국 대학의 아시아 태평양(Asian Pacific) 학부에서도 한국에 대한 강의의 수요가 높아 한국학 전공이 증가하고, 전공이 없더라도 강의 개설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 멕시코를 다녀왔다는 던컨 교수는 “중남미 학자들과 네트웍이 있는데 멕시코·브라질·칠레·아르헨티나, 이런 나라들 가보면 한국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고 말했다. UCLA 한국학연구소 소장 시절 던컨 교수는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남미 주요 대학에 한국학 지원사업을 했다. 한국 역사나 인문학 전공 교수가 부족한 남미 대학에 UCLA 한국학 연구소가 한국학 강좌를 제공하고 그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한국학 전공자를 양성하도록 수준을 높이도록 적극 지원한 것이다.
은퇴 후에도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와 역사학과 명예교수로 한국학 연구를 하고 고전 번역을 하느라 바쁘다는 그는 1년에 한 번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정해진 임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은퇴를 결심한 이유를 묻자 던컨 교수는 “유망한 젊은 학자들이 갈 데가 없다. 새로운 사람이 (연구소장으로) 들어와야 프로그램이 활기차지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는데…”라며 한국학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드러냈다.
던컨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3세들에게 ‘세계 속의 동양, 동양 속의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자아상(Self-image)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체성’(Identity)이라는 말에는 올바른 정체성과 같은 규범적인 내용이 포함되기에 ‘자아상’에 무게를 두는 던컨 교수는 “한국인의 자아상은 공통점이 있지만 다양할 수 있다. 출신지역, 사회계급, 부모직업에 따라 자아상이 달라지므로 스스로의 자아상을 확립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
하은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한국사 교과서가 한국 표준이고, 세계사 교과서가 세계표준임. 그리고 여러 학습 참고서, 백과사전, 주요 학술서적으로 판단해야 정설(定說)에 가까움.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 세계사로 보면 중국 태학.국자감(경사대학당과 베이징대로 승계), 서유럽의 볼로냐.파리대학의 역사와 전통은 지금도 여전히 교육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