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내 가슴에 그리움이 되어 해마다 사랑으로 피어나는 노랫말이다.
1992년 5월, 나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을 통해 미국에 첫 발을 내디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카고의 정경과 대 화재란 아픔을 딛고 재건된 도시가 주는 감동은 앞으로 펼쳐질 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차분하게 보낸 생활이 3개월이 되지 않아 치열한 이민자의 삶을 겪게 되었다. 남편이 직장으로부터 해고를 당한 것이었다. 예기치 않은 상황은 비자상태와 체류기간에 대한 불안감과 경제적인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연하면서도 멀리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들께는 걱정하실까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내 나라의 버젓한 직장에서 이루어 놓은 경력과 전문지식이 있다 한들 기본적인 언어가 원활하지 않으니 무용지물이요, 일상생활에서조차 커뮤니케이션이란 벽에 부딪히기가 일쑤였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내 설움에 숱한 씨름을 하며 지내던 시간들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식욕저하와 무기력증으로 이어졌다. 지난 날에 대한 상념에 빠져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다가 낯익은 꽃을 보았다. 담장아래 채송화가 나즈막히 피어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보다 그리움으로 남아있던 애잔한 노래가사가 눈물이 되어 쏟아졌다. 설움과 불안 그리고 고단한 나의 마음을 눈물로 다 쏟아내듯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이후 남편의 직장 문제가 해결되었고 부모님이 미국을 방문하셨다. 아버지는 정원에 꽃씨도 묻고 잡초도 뽑으며 부지런히 집을 가꾸어 주셨다. 다른 문화의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계시던 아버지는 많은 사랑의 언어로 위로해 주셨고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라 일러주시었다. 여름이 되자 아버지가 심어 두고 가신 씨앗에서 봉숭아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한국의 식구들을 만나듯 돌 지난 아들을 안고 매일 아침 정원을 서성거렸다. 소담하게 늘어가는 봉숭아꽃은 소외된 나의 마음을 일으켜 주었고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되뇌이게 해 주었다.
2020년 여름, 뜨거운 햇살 아래 피어난 봉숭아 꽃을 보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피어오른다. 온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상황으로 아파하고 있지만 서로를 사랑하며 격려하는 아름다운 이야기 꽃이 더욱 많이 피어나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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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정 (워싱턴한인복지센터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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