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ep & Wide
바이든 외교라인의 핵심 제이크 설리번에 쏠리는 눈, 외교 연설문과 토론에 일가견
▶ 국무부의 블링컨과 ‘환상호흡’ 미국 우선주의·국내정치 중시
지난달 2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새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에브릴 헤인즈 국가정보국(DNI)국장,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장관, 존 케리 대통령 기후특사, 그리고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UN주재대사. 이중 바이든 외교안보라인의 투톱은 누가 뭐래도 블링컨 국무장관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인데, 현재 워싱턴 정가에선 올해 43세의 설리번에 더 주목하고 있다.
■바이든 부통령을 사로잡다
오바마 행정부 1기,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가장 큰 임무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을 꾀하는 일이었다. 국무장관에 취임한 힐러리는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 자신의 외교 오른팔인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을 아프가니스탄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다. 홀브룩은 빌 클린턴 부부가 가장 신뢰하는 외교관으로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국무장관 0순위로 거론되던 인물이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힐러리 외교안보팀을 지휘하면서 오바마팀과 격렬하게 부딪쳤고 그래서 오바마의 백악관 안보팀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거물이기도 했다.
제이크 설리번은 자신의 집무실로 홀브룩과 그의 참모인 프랭크 루지에로를 불렀다. 탈레반이 과연 협상에 응할지, 카르자이 아프칸 대통령을 어떻게 탈레반 협상 테이블에 앉힐지 등에 대해 검토하는 자리였다. 힐러리 장관도 배석했다. 이제 막 30대에 접어든 설리번은 2008년 대통령선거를 치르면서 이미 힐러리와 홀브룩의 중간 지점을 차지하고 있었다.
회의 도중 홀브룩이 갑자기 신음소리를 냈다. 얼굴도 붉은색으로 변했다. 홀브룩은 괜찮다고 했지만 힐러리는 앰뷸런스를 불렀고 설리번과 루지에로가 그를 부축했다. 홀브룩은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졌다.
급히 실려 간 조지워싱턴대학 병원에서 장시간 수술을 받았지만 사흘 만에 사망했다. 워싱턴DC에서는 그를 성인처럼 추앙하려는 클린턴 부부의 노력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장례식이 치러졌다.
갑작스러운 사망이었지만 오바마 백악관과 힐러리팀 간 불화의 불씨였던 홀브룩은 그렇게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홀브룩의 자리는 설리번이 차지했다. 홀브룩과 달리 설리번은 영리했다. 최선을 다해 힐러리의 성과를 오바마의 업적으로 만들었고, 힐러리에게 대통령의 신뢰가 쏟아지게 함으로써 힐러리-오바마의 신뢰 관계를 굳건하게 했다. 백악관의 안보 관련 장관급회의에 단골로 참석했던 설리번은 매우 정확하고 선명하게 힐러리를 보좌했다. 그 자리에 있던 조 바이든 부통령의 눈에 들기에 충분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국무장관이 없는 백악관의 안보회의에도 가능한 한 설리번을 불렀다.
■엘리트 코스
설리번은 명문 예일대(학부, 로스쿨)와 로즈장학생으로 간 옥스퍼드대에서 ‘역사와 국제정치학’ 관련 토론과 논쟁, 그리고 글쓰기로 이름을 날렸다. 예일의 대학신문인 ‘예일 데일리 뉴스(Yale Daily News)‘와 예일 법대의 ’예일 로 저널(Yale Law Journal)’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의 ‘옥스퍼드 인터내셔널 리뷰(Oxford International Review)’까지 편집장을 지냈다. 그가 고향인 미니애폴리스로 돌아왔을 때 겨우 27세였다.
설리번은 미네소타의 연방상원의원인 에이미 클로부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클로부셔 의원은 설리번을 힐러리 클린턴에게 소개했다. 같은 시기 미네소타 최대 로펌에서 일하며 대법원 서기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렇게 설리번은 워싱턴으로 진출했다.
설리번은 2008년 대통령 선거전에서 힐러리 클린턴 캠프의 외교안보팀에 합류했다. 쟁쟁한 전문가들 틈바구니에서 주로 힐러리의 외교 연설문과 토론을 담당했다. 경선 후 오바마가 후보가 된 뒤엔 오바마의 연설문 작성 보좌관으로 발탁됐다. 힐러리 캠프 출신 중에서 오바마 후보를 가장 밀착 수행하는 보좌관이었다.
오바마1기가 출범하자 그는 힐러리 국무장관을 그림자 수행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사임하자, 조 바이든 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떠나는 힐러리에게 수차례 간곡하게 요청해서 설리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끌어들였다. 조너선 앨런이 쓴 힐러리 전기에는 설리번이 백악관에 남게 된 경위에 대해 “힐러리의 최측근인 설리번은 힐러리와 오바마의 재촉을 받아 조 바이든의 국가안보 담당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때부터 토니 블링컨과 제이크 설리번은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백악관의 설리번과 국무부의 블링컨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줬으며 유대계의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이란과의 핵합의를 이끌어 냈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금도 지구촌 핵문제의 모범답안은 이란과 미국간의 핵합의라고 믿는다. 이란 핵합의 당시는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백악관과 국무부가 가장 잘 소통하고 협력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바이든 1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이끌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조합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됐다.
■여전히 미국우선주의
설리번은 지난달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뒤 첫 발언에서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을 비교적 선명하게 제시했다.
“국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국제 안보 문제와 함께 국내의 불평등과 혼란, 노동자와 정부 사이의 단절 문제를 백악관의 테이블에 동시에 올려놔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통상 미국에선 외교문제는 국민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는 이슈가 아니라고 간주되어 왔는데, 이젠 외교안보에서도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짜겠다는 것이다.
임명 다음날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는 “전염병으로부터 회복과 탈출이 먼저이고, 공중보건을 국가안보의 영구적 우선순위로 만드는 것이 백악관 안보실의 우선 책무”라고 했다. 이어 “미국과 전 세계가 효과적인 공중보건 감시시스템이 없는 중국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매우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야말로 팬데믹이 재발하지 않을지 확인하는 방법이다”라며 팬데믹 중국 책임론을 매우 명확하고 강력하게 언급했다.
설리번은 또 “미국은 중국의 팽창에 맞서도록 국제사회를 집결시킬 수 있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이다”라고도 했다. 동맹국에게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뉘앙스여서 한국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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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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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옆에 설리번과 같은 인재가 두뇌역할을 하면서 생산할 정책들과 명분들이 기대된다. 트럼프 옆에 있던 Stephen Miller가 극우적인 정책으로 트럼프를 조종한 것과 완전 비교된다. 바이든의 오랜 의회생활, 부통령으로서의 행정부 생활에서 배운 탁월한 경륜과 광범위한 인맥풀에서 고를 수 있는 인재들은 트럼프가 망쳐놓은 국내와 국제문제에서 정상급 정책들과 실천으로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를 신속하게 회복하고, 국내에서도 친절한 정책으로 국민들 단합하고, 부요하게 하기를 고대한다. 미국은 훌륭한 지도자만 있으면 성공할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