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일석 대한심장학회 심장종양학연구회 학술위원장
진료실에 참 많은 사연들이 오고 간다. 몇 시간 만에 수십 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모두가 주연이고 조연이다. 최소한 몇십 년 이상 살아온 분들이니 어느 누구든 사연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 고혈압이나 심장병인데 요즘 가끔씩 암 환자를 만난다.
심장에 생긴 암이 아니고 유방암ㆍ폐암 같은 암 환자가 숨이 차 진료실을 찾거나 의뢰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암 종류나 전이 여부 같은 진행 정도에 따라 치료가 다를 수 있지만, 수술과 항암화학 요법, 표적 치료, 때론 방사선 치료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런 과정에서 심장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암과 심장병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심장에 생기는 암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심장세포가 분화가 잘 되지 않아 분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암이 적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반면 유방이나 폐는 심장과 매우 가까이 있고 심장으로 암세포가 전이될 수 있어서 이미 전이됐다면 4기 암이나 말기 암이다. 심장에 전이되지 않았는데도 유방암이나 폐암을 치료하다 보면 심장에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바로 항암제나 방사선이 원인이다.
유방암은 최근 표적 치료제 등 매우 효과적인 항암제가 나와 많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문제는 유방암 표적 치료제 가운데 일부가 심장에 상처를 줘 심장 기능이 떨어지는 심부전이 생기는 것이다.
방사선 치료도 오래 지나면 협심증처럼 관상동맥이 좁아지는 병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항암제는 혈압을 올리거나 부정맥을 일으키며, 일부 항암제는 심근염이라는 치명적인 심장병을 유발한다.
유방암은 전 세계 여성 암 1위이고, 우리나라도 여성 25명 중 1명이 유방암에 걸려 매년 2만 명이 넘는 환자가 새로 진단된다. 우리나라 유방암은 다른 나라보다 많이 생기지만 사망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만큼 진단 기술이나 검진 프로그램이 잘돼 있고, 치료 수준도 높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유방암으로 인한 항암 치료 중에 심장에 이상이 생기면 항암제를 중단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긴다. 새로운 항암제도 예외가 아니다.
항암제를 먹다 보면 심장 독성이 생길 때도 있는데, 이는 고혈압이나 심장병이 있었거나 고령에서 잘 오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서 예측이 어렵다. 유방암에 걸린 것도 힘든데 심장까지 나빠져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던 항암제 치료도 중단해야 한다면 환자ㆍ가족ㆍ담당 의사도 모두 힘들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항암제에 의한 심장 합병증이나 심장 독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잘 알려지고 비교적 흔한 유방암을 항암제로 치료할 때 심장 기능을 꼭 체크하고, 치료 도중에도 다시 확인하도록 권고하는 진료 지침도 나왔다.
항암제 심장 독성으로 심부전이 생기면 절망적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심부전을 치료하는 좋은 약이 이미 나와 있어 초기에 잘 진단하고 치료하면 회복될 때가 많다. 한 명의 암 환자를 치료할 때 다양한 분야의 진료과 의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치료할지 논의하는 다학제 진료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 암을 앓는 것도 힘든데 심장병까지 걸린 환자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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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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