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카페도 요즘 상당히 괜찮은 편이지요?”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윗층 직원들중 고참의 멘트에 그의 동료들은 웃음을 머금고 나를 쳐다보니 머쓱해졌다. 하하하 웃고 말았다. 바로 내 손에 들려 있는 맥도날드 커피가 그들 화젯거리가 된 탓이었다. 그들은 내가 커피값까지 아끼는 구두쇠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출근길에 만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허구한 날 나의 손에 들려 있는 맥도날드 커피가 엘리베이터 안 좁은 공간에서 자기들이 들고 있는 커피잔과 묘한 대조를 이루자, 드디어 참다못해 한마디 농담을 던진 것이다.
커피에 관한 생각에 잠겼다. 미국에 처음 도착한 이후 거의 20년간 나는 세븐일레븐 커피를 마셨다.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익숙한 맛이었다. 길모퉁이마다 있는 그곳의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는 활력소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사는 커피의 고급화를 내세우며 변화를 시도했다.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고, 내려놓은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팔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방 갈은 원두를 작은 팟에 내려주던 그 향취가 사라졌다. 하루아침의 일이었다.
어디서 커피를 사 마실까 고민하던 차에, 기회를 놓치지 않은 회사가 있었다. 맥도날드였다. 커피의 고급화를 외치며 ‘맥카페’를 내세웠다. 부드러운 맛의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딱 맞았다. 지금도 어느 커피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커피다.
집에서는 스타벅스 원두를 순하게 갈아 내려 마시지만 매장에서 사 마시는 일은 거의 없다. 내 입맛에는 조금 강하다. 맥도날드 커피를 자주 마시는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사무실 건너편에 있고, 걸어서 갈 만한 다른 커피숍이 없고 시간이 절약 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맥도날드에서 57세 이상이면 스몰 커피를 ‘시니어 커피’를 이름 붙여 절반 가격 정도에 살 수 있다. 예전엔 50센트 정도였는데 지금도 94센트이다. 걸인들도 요즘은 2달러를 줘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며 싱긋 웃는 시대에 말이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늘 제값을 주고 커피를 사 마셨다. 그러다 60이 넘어서야 누군가 알려주었다. 매장을 찾은 나는 당당하게 시니어 커피를 주문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젊은 캐시어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누가 당신을 시니어로 보겠느냐?” 줄서있던 주변 사람들까지 따라 웃었다.
나는 운전면허증을 꺼낼 여유도 없었다. 얼굴만 붉어진 채 그 자리를 얼른 빠져나왔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양인의 나이를 가늠하지 못한 그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몇십 센트를 아끼려 했던 내 마음 때문이었을까. 괜히 거짓말을 한 사람처럼 보여져 더 민망했다.
그 일이 있은 뒤 십 년이 넘었다. 지금도 커피가 많이 필요하지 않을 때면 시니어 커피가 떠오른다. 하지만 여전히 망설여진다. 그래서 가끔 드라이브 스루에서만 주문한다. 돈을 건낼 때 캐시어의 표정을 보면 “Really?” 하는 눈빛이 재미있기도 하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커피를 한 잔 사서 앉으려 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간이 의자를 하나 발견해 구석에 앉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자리는 나지 않았다. 마치 벌 받는 아이처럼 조그만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웠다. 결국 의자를 밀어 놓고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 가면 점심시간에 뒷골목 실비식당을 찾는 일이 많다. 혼자 식당에 가는 것이 싫어 일부러 사람이 많은 사원 식당에 간다. 음식은 정갈하고, 양도 많지 않아 오히려 좋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손에 들린 커피를 볼 때마다 마음이 걸렸다. 커피 한잔 값이 점심값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가벼운 ‘커피믹스 커피한 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일년간 커피값을 아끼면 얼마나 절약되는지를 계산한 글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과연 커피 한 잔으로 자신의 형편과 품격과 고상함을 고스란히 보여 줄수 있는 것일까? 오늘도 맥카페 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다. 값이 싸서 보다는 입맛에 맞고, 바쁜 삶의 리듬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기꺼이 가까운 사무실 건너편 맥카페 단골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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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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