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대응 여론 업고 초강수…유가급등 위험 무릅쓴 ‘푸틴 돈줄죄기’
▶ EU 뺀 독자 제재…경제적 파장 최소화·러産 원유 대체방안 ‘발등의 불’
조 바이든 대통령[로이터=사진제공]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일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 금지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2일 만의 초강력 제재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잇따른 경제 제재에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이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자 그간 아껴뒀던 메가톤급 카드를 내민 것이다.
러시아 경제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이날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 조치는 '마지막 승부수'에 가깝다는 평가다.
자국 안보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그 책임을 묻겠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간 충돌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금지한다고 천명했다.
지금까지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에는 큰 영향을 주면서도 서방에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경제 제재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그는 지난달 24일 대국민 연설에서 이런 원칙을 언급하며 "러시아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은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 경제에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정밀타격식' 제재를 뜻했다.
하지만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는 러시아에 큰 타격을 주는 동시에 미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다.
고육지책이자 일종의 '극약처방'인 셈이다.
미국의 수입 원유 중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다. 또 휘발유와 디젤 생산에 필요한 연료유 등 석유제품까지 포함할 경우 8%가량이다.
미국이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는 없다.
벌써 파장은 현실화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발표가 예고되자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러시아 금수조치의 충격이 현실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로 40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미국이 에너지 대란까지 감수한 것은 그 만큼 러시아와의 '대전'(大戰)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란 분석이다.
일부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러시아의 최대 '돈줄'을 옥죄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압박 수준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연설에서 이번 조처로 인해 미국이 치를 부담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 압박이라는 목표에는 단합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여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고 가스 수입이 없다는 점도 바이든 대통령이 이처럼 '담대한 결정'에 나서는데 고려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의 40%, 석유의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바이든 대통령의 초강수 제재 이면에는 이번 사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도 직결돼 있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40여년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에 따른 국민적 고통과 아프가니스탄 철군 과정에서의 적지 않은 희생 등으로 추락했던 지지도가 대러시아 강경 대응으로 치솟고 있어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상원과 하원 다수당 지위 '사수'가 올해 중간 선거의 최대 목표인 만큼 지금의 여론 지지세를 이어가겠다는 속내도 없지 않아 보인다.
이날 석유 수입 금지 조처에 앞서 미국은 연일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 카드를 내밀며 러시아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을 비롯한 주요 은행들을 제재 대상에 올린 데 이어 금융 제재의 '핵옵션'으로 불리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전산망에서도 퇴출시켰다.
외국 기업 제품이라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기술 등을 사용했다면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도 적용했다.
푸틴 대통령의 돈줄인 러시아 신흥재벌 '올리가르히'는 물론 푸틴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 대한 직접 제재도 추가했다.
러시아 항공기의 미 영공 진입 금지 조처를 발표하고 러시아의 전쟁을 돕고 있는 벨라루스에 대해서도 수출통제 제재를 가했다.
그동안 유럽연합(EU)과 제재 보폭을 맞춰왔던 미국은 이날 원유 수입 금지 조처를 단독으로 발표했다.
유럽은 미국보다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훨씬 높기에 EU 내에서 대러 에너지 제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탓이다.
미국이 자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혼란을 가중할 수 있는 대러 원유 수입 금지라는 초강수를 둠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도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대체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경제 제재 완화, 핵합의(JCPOA) 타결 시 이란의 원유 수출 재개, 중동의 원유 증산, 미국 자체 증산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원유 수출금지 제재를 일정 부분 풀면서 석유를 수입해 부족분을 메우는 한편, 러시아의 동맹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로부터 러시아를 고립시키겠다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져 주목된다.
실제로 백악관과 국무부 당국자들은 최근 베네수엘라를 방문해 원유 수출 제재 완화 방안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번 러시아 에너지 금수조치는 지금까지 있었던 여러 대러시아 제재 가운데 단순히 하나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전 세계가 이번 조치가 푸틴 대통령와 러시아를 얼마나 압박하게 될지, 또 미국 경제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향후 EU 등 여타 국가들이 얼마나 이번 조치에 동참할 지 주시하는 이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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