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구해도 몇번을 구했나봐!”
나를 보고 친구들이나 잘 아는 지인들이 우스갯소리로 자주 하는 말이다. 어디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들을 때마다 미안하고 씁슬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그럼 난,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인가?” 옆에 있던 신랑이 툭 한마디 던진다. 순간 마주친 눈과 눈, “피식!” 헛웃음이 났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흔히 말하길 긴 병에 효자없다는데 어느덧 7년을 넘어 근 8년을 먹고 싶다면 뭐든지 정성껏 요리해주고 입혀주고 신겨주고 병원에 한의원에 때로는 마사지샵에 데려가니 “웬 복!” 역시 나라를 구한 사람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재혼 부부다. 9년 전 내가 남편의 세탁소에 취직을 하면서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배우자와 헤어져 혼자일 때 만나 지금 우리는 한 사람은 “나라를 구한 사람” 또 한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누구보다 이기심 많은 7남매의 막내딸이며 철딱서니 없는 두 아들의 엄마였다.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상대방보다는 내가 우선이었던 부족함 많은 여자. 거기에 뇌출혈 수술까지 한 환자! 보란듯이 내놓을 것 하나 없지만 어디서 생겨난 자신감인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인연은 시작되었다. 나의 무조건적이고 끊임없는 구애에도 남편의 무관심과 수없는 거부 의사에도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오래 전부터 ‘어떻게 재혼을 할 수 있을까? 진실로 다시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다. 어쩌면 근본적으로 이혼 자체는 물론 재혼을 불신 어린 시선으로 보아왔는지 모른다. 그랬던 내가, 싫다는 남편에게 일방적 구애로 “나를 좋아해라, 좋아해라, 좋아하게 되라!” 마술 걸듯이 밀고 들어가서 끝내 남편의 “항복”을 받아냈다. 결국 우리는 너와 나에서 함께하는 부부가 되었다.
문득, 우리의 만남은 나에겐 축복이고 남편에겐 무엇일까 싶었다. 뒤돌아보니 많이 미안하고 무척 고마웠다. 한편으론 왠지 그이가 측은해 보였다. “나라를 구해도 몇 번을 구했을 사람인데” 나의 이기심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 되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찬란한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 저 멀리 타다 남은 해무리 언저리에 붉은 가을이 익어간다. 악다구니하며 미웠다 예뻤다 고왔다 싫었던 우리들의 사랑 싸움도 이젠 노을빛 되어 황홀하다. “아, 인생은 내가 그린 한폭의 그림인 것을!” 저 저녁 노을에 뜨겁던 가슴들이 이젠 별이 되어 쏟아진다. 주고 주고 또 주고 너무 고마운 “나라를 팔아먹은 당신!” 사랑합니다. 언젠가, 그 언젠가 내가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이 되어 당신에게 드리고 드리고 또 드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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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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