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갔다가 내 발에 걸려 맥없이 내동댕이치듯 넘어진 날,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걸림돌이 없었는데 걸리듯 넘어졌다. 심상치 않은 이 느낌은 뭘까? 설마 별일 아닐 거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지만 기대와 달리 다리의 불편함은 점점 더 분명해졌고 기어이 병원에 가게 되었다. 진단을 위한 진료 및 검사 등으로 몇 달이 흘렀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말도 안되게 더디고 복잡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감지하는 나… 반면, 허리 MRI 와 다리 근전도 검사에서 이상소견을 찾지 못해 치료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사… 몸의 불편함과 마음의 초조함을 달래며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다리 움직임이 어색하지 않도록 늘 신경을 써야 하는 내 마음이 고달플 뿐, 다른 사람이 눈치챌 정도는 아니었다. 멀쩡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 이 괴리감이 마음을 꽤 힘들게 했다 (지금도 그렇다). ‘멀쩡하지 않은 나’에 집중할 때 엄습하는 불안과 두려움, 멀쩡해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로움, 그런가 하면 멀쩡하게 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감사함, 이 복합적인 감정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 이 끝에서 저 끝을 가로질렀다.
결국 하던 일들을 줄였다. 도저히 그만둘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이 의외로 쉽게 정리가 되었다. ‘건강 악화’는 자타가 수락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과부하로 나를 떠밀던 시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일상이 고요 해졌다. 텅 빈집에 홀로 남겨진 느낌,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 끝없는 광야 한 가운데 버려진 느낌… 원인도 결과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증상으로 삶이 멈추었다. 분명 위기였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여잡고, 이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로 한다. 나에게 있어 정면돌파는 상황 해결의 주도권을 생사 화복의 절대 주관자, 상황 역전이 가능한 전능자께 넘기고 나는 그저 내 몫을 감당하는 것이다. 경직된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보이지 않는 그 분을 신뢰하며, 밀물처럼 다가오는 두려움의 실체와 맞서는 것이다. 늘 그랬듯 철저히 혼자인 순간이야 말로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기에, 두려움보다 더 큰 믿음으로 정면을 응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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