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용띠지요. 용띠생이셨던 친정아빠 얘기를 할까 해요. 저는 지난 일년이 넘도록 무척 슬프고 가슴이 아팠어요. 2년전 친정 아빠가 돌아 가셨거든요. 52년 용띠생이셨던 아빠와의 인연은(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대학교때 무지 짝사랑했던 64년 용띠생 교수님은 16살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같은 과 친한 친구와 결혼해 버렸고, 오래전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던 76년 용띠생 한 부잣집 아들은 제가 싫어 줄행랑을 쳤던 걸 보면 저는 용띠 남자들 하고는 평생 인연이 먼 것 같아요.)
가깝지도 깊지도 못했어요. 친정 엄마가 지병으로 돌아가신 후 아빠는 6살 저를 할머니 댁에 남겨두고 오빠만 데리고 새 장가를 갔거든요. 그후 아빠에 대한 원망은 이뤄 말할 수 없이 가슴에 쌓여갔는데 택시기사 아빠는 이런 저의 마음도 모른 채 동해번쩍 서해번쩍 “문정이가 보고 싶어서 왔다”라며 어느새 내 앞에 서 있곤 했지요. 아빠는 학교 마칠 시간 즈음 구멍가게 앞에서 빵빠래를 친구 모두에게 사주고 사라지기도 했고 어떤 날은 할머니댁에 과자와 학용품을 한보따리 사와서 공책 맨 뒷장에 짧은 사랑편지를 쓰고 용돈 만원을 끼워두고 사라지기도 했어요.
이날은 아빠가 나를 못 보고 바로 일하러 가야하니 내 공책과 책들을 다 훑어본 날인것 같아요. 어쩜 그리도 빨리 나타나고 빨리 사라지는지 어릴 때는 진짜 아빠가 홍길동 인줄 알았어요. 그때 아빠가 사준 동아연필 옅은심 두자루는 아직 저에게 남아 있어요. 40년이 넘도록 간직해온 걸 보면 저도 아빠를 무척 사랑한 것 같아요.
아빠는 키도 크고 잘생긴 미남이어서 당연히 한량 이셨지요. 가무에 능숙하셔서 늘 주위에 사람들을 끌고 다니며 택시기사로 번 돈에 부농이신 할머니돈까지 보태 다른 사람들에게 쓰며 평생 남 좋은일 다 하며 살다 가셨어요.
외로워서 그랬을까요? 누군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용띠들은 외로운 팔자라고? 생전에 많이 외롭다고 하신 걸 보면 틀린말은 아닌 것 같아요. 듬성듬성 겨우 이어진 부녀지간으로 아빠의 외로움을 달래 드리지 못한 딸이었기에 슬픈 마음이 한 켠에 남아 있지만 생전에 묶인 마음을 서로 풀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그 옛날 아빠가 내 공책에 써 준 사랑편지의 답장을 제가 시로 써서 보내 드렸거든요. 다 컸지만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왜 평생을 아빠라고 부르며 높임말을 쓰지 않았던 이유도 말해 드리면서요.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에는 전화넘어“문정아 미국은 지금 몇시고? 서서방은 잘 있나? 민성이는 잘 크나? 라며 도돌이표 음악처럼 늘 똑같은 멘트로 딸의 안부를 묻던 아빠 목소리가 그립네요.
‘용띠 내 아빠 박영제 그곳에서는 외롭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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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핑도는 사부곡입니다. 나도 분명히 아빠인데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나를 그렇게 그리워 할 어떤 부정을 느끼게 할 만한 일을 한적이라도 있나 생각해 보면 없어요.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아빠로 생을 마칠까 마음한켠의 걱정도 큽니다. 누가 날 그리워 할까, 과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