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유산 등재 30년 맞은 종묘 정전, 대규모 공사 끝내고 오늘 공개
▶ 의궤 토대로 155년 만에 환안 재현…가마 28기 서울 도심 행렬 눈길
▶ “우리 기술로 옛 장인 손길 되살려”…미디어 파사드 활용 특별 공연도

20일(한국시간)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종묘 정전까지 조선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 환안 행렬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라옵건대 강림하시어 작은 정성 받으소서".
일요일인 20일(한국시간) 오후 서울 종묘 정전(正殿).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신 정전 19칸의 문이 오랜만에 활짝 열렸다.
각 신실에서 신주를 덮고 있었던 함을 열었고, 헌관(獻官·잔을 올리는 제관)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절한 뒤 왕과 왕비께 향을 3번 올렸다. 천상의 왕과 왕비의 혼을 모시기 위한 예였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실마다 잔을 올린 제관들은 약 5년에 걸친 보수 공사를 모두 마치고 신주 49위가 무사히 돌아왔음을 널리 알렸다.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상징하는 정전의 '주인'이 약 4년 만에 환안(還安·다른 곳으로 옮겼던 신주를 다시 제자리로 모심)하는 순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국보인 종묘 정전이 오랜 기다림 끝에 20일 공개됐다.
지붕을 덮고 있던 기와를 전통 기법을 살린 수제 기와로 모두 교체하고, 정전 앞 시멘트 모르타르를 제거하는 등 5년에 걸친 대규모 공사를 마친 모습으로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이날 열린 준공 기념식에서 "다시금 성스러운 기운으로 가득 찰 이 공간에서 우리는 그 뿌리와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왕의 신주'가 돌아오는 여정은 관심을 끌었다.
이날 오후 2시 창덕궁 금호문을 출발해 광화문, 종로를 거쳐 종묘로 이어진 환안 행렬에는 시민 200명을 포함해 약 1천100명이 참여했다.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인 신연(神輦)과 신여(神轝), 제사에 사용하는 향로 등을 운반하는 향용정(香龍亭) 등 28기의 가마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모습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행렬을 배경으로 한 채 '셀카'(셀프 카메라)를 남기기도 했다.
금호문 일대에서 행사를 보던 이병헌 씨는 "155년 만에 열리는 행사를 보러 일부러 찾아왔다. 우리 옛 전통과 문화를 되살린 모습이 웅장하다"고 벅찬 감정을 표했다.
'귀한' 행차를 할 수 있었던 건 선조들의 기록 덕분이다.
헌종(재위 1834∼1849) 대인 1835∼1836년에 종묘를 증축한 과정을 정리한 '종묘영녕전증수도감의궤'(宗廟永寧殿增修都監儀軌)에는 이안과 환안 과정이 남아있다.
당시 조선 왕실은 종묘에 있던 신주를 경희궁에 이안(移安·신주를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심)했다가 정전과 영녕전 공사가 끝난 뒤 다시 옮겼다.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2천84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궁능유적본부 측은 "가마를 모두 제작할 수 없기에 신여, 향용정, 신연 각 1대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기존 가마를 수리하고 빌려 28기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유산청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오늘날에 맞게 행사 규모를 조정하되, 시민 행렬단과 함께 약 3㎞ 구간을 함께 행진하는 방식으로 의례를 재현했다.
한국에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행렬단에 참가했다는 호주인 제임스 그리마 씨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알게 돼 즐겁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7살 딸과 함께 행사를 본 박유선 씨는 "우연히 나들이 나왔다가 행사를 봤는데 아이가 좋아했다"며 "우리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행사가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종묘 정전에서는 특별 공연도 펼쳐졌다.
어둠이 내려앉은 종묘 정전을 배경으로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과 조명을 활용한 무용 공연을 본 참석자들은 눈앞의 순간을 놓칠까 사진을 남기며 박수를 보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조선 왕실의 신주가 정중히 모셔지고 위엄과 품격이 온전히 되살아났다"며 "종묘가 우리 삶 속에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자리하며 그 가치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올해는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지 30년이 되는 해다.
종묘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함께 1997년 우리나라의 첫 세계유산이 됐으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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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총 2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대를 거쳐 근친상간으로 정신병자에 난장이에 온갖 유전병으로 쓰러져간 조옷선 몽골 다루가치 시대....를 국제문화 유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가 없다....
어처구니가 없네......90프로가 노비였는데...그걸 해방해주니..다시 노비가 좋다고 굿을 하는구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불경기에 무슨 빌어먹을 짓에 돈을 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