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몸을 망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는 의미의 ‘패가망신’.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이 경제·사회적으로 몰락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누군가를 지목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벼르는 건 화자가 엄청난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이를테면 대통령.
■ 패가망신 경고는 권력자를 찌르는 칼이 되고는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인사·이권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깨끗한 정치에의 의지를 보여준 말이었지만, 친인척·측근의 부정부패로 스스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2년 차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선사 청해진해운을 겨냥해 “이런 사고를 내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사회의식이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으나, 대통령의 책임엔 눈을 질끈 감은 게 문제였다. 매정했던 박 전 대통령은 2년 뒤 민심의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패가망신 발언은 자기예언적이었다. 대선주자 시절 “대권 도전은 가문의 영광이나 개인의 광영이 아니라 패가망신하는 길”이라며 “손가락질 당할 각오로, 명예와 인간관계를 다 버리고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검사로서 정치인들의 무수한 추락을 지켜보았기에 한 말일 테지만 ‘패가망신의 반면교사’를 삼을 만큼 현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은 누구나 패가망신시켜야 한다”는 시민 105명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해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 이재명 대통령의 첫 번째 패가망신 경고는 주식시장을 향했다.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오늘을)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겠다”고 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 행위를 엄벌하고 부당이득을 몇 배로 환수해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새 정부 들어 코스피가 연일 상승세인 건 투자자들이 이 대통령의 힘을 믿어서일 것이다. 이번만큼은 대통령의 말이 허무한 힘자랑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최문선 / 한국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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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석렬....국민과 나라를 위하은 마음으로 술만 처 마시다 국민이준 총을 국민가슴에 들이댔나?...종신형이상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