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전혀 문화적이지 않고 예술적이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요즘 문화예술계를 손보느라 상당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취임한 지 이제 7개월인데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냈다.
1월20일 취임 첫날, ‘대통령예술인권위원회’를 해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대통령에게 예술문화인권 문제에 대해 조언하는 이 연방기관을 그는 1기 때도 해체했으나 5년 후 바이든이 복원시키자 이번에 다시 없애버렸다.
2월7일, 케네디센터의 데이빗 루벤스타인 이사장을 해고하고 자신이 이사장으로 ‘셀프’ 취임했다. 10일에는 데보라 러터 회장과 바이든이 임명한 18명의 이사들을 해임하고 그 자리를 문화예술 문외한인 자신의 충신들로 채웠다. 이 일로 뮤지컬 ‘해밀턴’을 비롯한 다수의 음악인들이 공연을 취소했다.
3월27일,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에 속한 21개 박물관과 14개 교육 및 연구센터에 ‘미국역사의 진실과 건전성 회복’ 행정명령을 내렸다. 전시와 프로그램에서 “반미국적이고 부도덕한” 내용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그 여파로 미셸 오바마의 공식초상화 작가였던 흑인 에이미 셰럴드가 예정됐던 전시를 취소했다.
5월2일, 2026예산안에서 국립예술기금(NEA), 국립인문기금(NEH), 박물관도서관서비스연구소(IMLS)의 기금을 삭제했다. 통과되면 미국의 문화예술사업을 지탱해온 이 기관들은 폐쇄된다.
5월30일, 국립초상화미술관의 킴 세이옛 관장을 “매우 정파적이고 DEI의 강력한 지지자”라며 소셜미디어에서 파면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스미소니언 기관의 인사를 해임할 법적 권한이 없다는 논란이 불거졌는데, 6월13일 세이옛 관장이 자진 사임하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8월12일, 스미소니언 산하 박물관들의 전시가 “미국적 이상”에 부합하는지 대통령이 ‘검토’할 수 있도록 전시내용과 자료를 120일 내에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8월13일, 올해 ‘케네디센터 명예상’ 수상자를 직접 선정 발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예로운 문화예술인 상을 컨트리가수 조지 스트레이트, 뮤지컬가수 마이클 크로퍼드,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가수 글로리아 게이너, 록밴드 키스 등 한물간 1980년대 연예인들이 수상하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팝 컬처 정키’인 트럼프의 수준을 보여주는 명단이라고 꼬집었다.
8월21일, 케네디센터의 댄스프로그램 디렉터와 2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들은 상주무용단인 ‘워싱턴 발레’의 자율권을 놓고 트럼프가 임명한 리처드 그레넬 회장과 이견을 보이다가 하루아침에 잘렸다. 25일, 새 디렉터로 무용계에서 ‘워크’(WOKE) 문화를 몰아내겠다고 트럼프에게 충성을 맹세한 자가 임명됐다.
트럼프는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처음 있는 일이다. 1기 때 예술분야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았던 그가 2기 들어 미국의 정신문화를 개조하려고 작심한 듯하다. 지난주 그는 “대학들에게 했던 똑같은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즉 하버드 등 명문대학들을 연방지원금 중단으로 굴복시킨 것처럼 박물관들도 전시의 편향성을 문제 삼아 진보적 서사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케네디센터와 스미소니언 재단이 주 타겟이 된 이유는 워싱턴DC에 있고 연방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스미소니언은 예산 10억달러 중 3분의 2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으며, 대법원장이 이사회 의장이고 부통령과 상하원의원 각 3명이 이사회 멤버로 올라있다.
연간 2,000회 이상 공연하는 케네디센터는 예산에서 연방기금 비율이 20% 이하로 적은 편이지만 트럼프가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하우스 등 공연장들이 낡아 대대적 보수가 필요하다며 2026예산에서 평소 6배인 2억5,700만달러를 배정했고, 일부 공화당의원들은 케네디센터 오페라하우스를 ‘멜라니아 트럼프 오페라하우스’로 개명하자는 법안을 내놓으며 딸랑거리고 있다.
트럼프가 독재를 좋아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집권 첫날에만 독재자가 되겠다더니 임기 내내 폭군처럼 군림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여느 독재자처럼 트럼프는 진보와 다양성과 깨어있음(WOKE)을 싫어한다. 진보의 아성인 대학들을 휘어잡은 그는 이제 ‘워크’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곳이라고 보는 문화예술계를 ‘밝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애국적 색채로 재편하기 위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
독재정권이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검열과 통제다. 히틀러의 ‘퇴폐미술’,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그랬고, 한국에서도 군사독재 시절 책과 영화, 노래를 검열하고 금지했다.
트럼프의 ‘스미소니언 검열’이 시작되자 전국의 많은 뮤지엄들이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와 LGBTQ(성소수자) 관련 전시와 프로그램을 연기, 보류, 취소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황금시대가 올 것”이라는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암흑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하지만 별로 걱정은 되지 않는다. 역사에서 언제나 예술을 탄압한 권력은 무너졌고, 예술은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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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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