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싱턴포스트 특약 건강·의학 리포트
▶ 초가공식품 위주 식단 장내 미생물에 안좋아
▶ 전문가들 “하루 최소 28g 식이섬유 먹어야”
▶ 콩·바나나·사과·배·보리·현미·귀리 등 권고
우리가 매번 식사할 때마다 사실은 ‘만찬’을 여는 셈이다. 손님은 바로 우리의 장 속에 사는 수조 개의 미생물들이다. 이 배고픈 미생물들, 즉 장내 미생물군(gut microbiome)은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건강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올바른 음식을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건강을 지켜주고 개선하는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내지만, 잘못된 음식을 먹으면 장의 염증을 일으키고 만성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설명은 플로리다주 올랜도 소재 어드벤트헬스(AdventHealt) 대사 및 당뇨병 전임상 연구소에서 영양과 미생물 연구의 선구적 논문을 발표한 카렌 코빈 연구원이 전한 것이다.
코빈은 “장내 미생물을 잘 돌보면, 그들도 당신을 잘 돌봐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장내 미생물을 제대로 먹이지 않으면, 그들은 진짜로 ‘배고파서 화를 낸다(hangry)’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장 점액층을 분해하고, 건강에 해로운 대사산물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코빈은 장내 미생물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 특히 저항성 전분(resistant starch)이 풍부한 식물을 자주 먹을 것을 권한다. 여기에는 콩, 완두, 렌틸콩, 바나나(특히 덜 익은 바나나), 사과, 배, 보리, 현미, 귀리 같은 통곡물이 포함된다.
보건 당국은 성인이 하루 약 28그램의 식이섬유를 섭취할 것을 권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이보다 훨씬 적게 먹는다. 그러나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의식적으로 늘리면 자연스럽게 저항성 전분 섭취도 함께 늘어나게 된다.
코빈은 “하루 한 가지라도 식단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흰빵 대신 통밀빵으로 바꾸는 것이다. 코빈은 “건강한 장을 원한다면 매일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오늘 내 장내 미생물에게 밥을 먹였나?’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식사에서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 장내 미생물을 위한 연료, 식이섬유우리 장내 미생물 대부분은 소화관 끝부분인 대장에 산다. 미생물들은 섬유질을 무척 좋아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대부분의 섬유질을 소화할 효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먹은 섬유질은 소화되지 않은 채 대장까지 내려가, 그곳의 미생물이 이를 ‘만찬’으로 즐긴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들은 단쇄지방산(short-chain fatty acids) 같은 유익한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이 지방산은 염증을 낮추고, GLP-1 호르몬(식욕 억제 호르몬) 생성을 자극한다. 이 GLP-1은 인기 있는 당뇨·체중감량 약물인 오젬픽(Ozempic), 위고비(Wegovy) 의 작용 원리이기도 하다.
저항성 전분이 풍부한 식물을 먹을 때마다 우리는 장내 유익균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셈이다. 저항성 전분은 미생물에 의해 뷰티르산(butyrate) 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염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코빈은 “대장의 미생물들은 섬유질을 대사해 혈당 조절과 포만감 유도 등 중요한 생리 작용을 돕는 분자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한다.
반면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은 정반대의 영향을 미친다. 흰빵, 베이글, 페이스트리, 설탕 시리얼, 칩, 크래커, 쿠키, 디저트 등은 섬유질이 매우 적다. 이런 식품은 씹기 쉽고 소화가 빨라, 상부 소화기관에서 대부분 흡수되어 우리 몸은 더 많은 칼로리를 얻고, 장내 미생물은 굶게 된다. 결국 혈당 급등, 체중 증가, 미생물 불균형이 일어난다.
■ 모든 칼로리가 같은 것은 아니다코빈은 “장내 미생물이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면, 결국 장 점액층을 먹어치운다”고 경고한다. 점액층은 병원균과 독소가 혈류로 침투하지 못하게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이 층이 손상되면 만성 염증, 감염, 대사질환 등이 유발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저섬유질 식단은 비만, 제2형 당뇨, 심장병과 관련된 장내 미생물 변화를 유발한다. 2023년 코빈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들을 대상으로 두 가지 식단을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했다. 하나는 초가공식품 중심의 ‘서구식 식단(Western diet)’, 다른 하나는 섬유질이 풍부한 ‘마이크로바이옴 강화 식단(microbiome enhancer diet)’ 이었다. 참가자들은 ‘대사 챔버(metabolic chamber)’라는 밀폐된 실험실에 머물며, 섭취와 소모 칼로리가 정밀하게 측정되었다.
결과는 뚜렷했다. 섬유질이 풍부한 식단을 먹은 참가자들은 초가공식품 식단을 먹었을 때보다 칼로리 흡수량이 적었고, 체중과 체지방도 약간 줄었다. 그럼에도 더 배고프다는 느낌은 없었다. 이는 식이섬유 식단에서 GLP-1 호르몬 수치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은 단쇄지방산 수치가 높았고, 미생물 분석에서도 장내 세균이 활발히 번성하고 있었다.
■ 식단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려면 음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억지로 싫은 음식을 먹으려 하기보다, 좋아하는 음식의 ‘업그레이드 버전’ 을 찾는 것이 좋다.
▲아침: 달콤한 시리얼 대신 당분이 적고 섬유질이 많은 시리얼 또는 강력분 귀리(steel-cut oats) 를 먹는다. 여기에 견과류, 씨앗, 베리류, 과일을 곁들이면 좋다. 또는 그릭 요거트(단백질·프로바이오틱스 풍부)에 아몬드버터, 베리, 아마씨·치아씨드 등을 추가해도 훌륭하다.
▲점심: 샌드위치를 즐긴다면 흰빵 대신 통곡물빵(‘whole grain’, ‘100% whole grain’ 표시 확인)을 선택한다. 가공육 대신 첨가물이 적은 칠면조·닭가슴살·로스트비프 등을 고르고, 시금치·토마토·양파·피망 같은 채소를 넣는다.
▲저녁: 파스타를 좋아한다면 흰 밀가루 파스타 대신 통밀 파스타나 병아리콩·에다마메 파스타로 바꾼다. 소스에는 가능한 한 많은 채소를 추가한다.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 때는 마트에서 산 소스에 버섯, 당근, 양파, 피망을 듬뿍 넣는다. 잘 보면 채소가 들어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어디에든 채소를 숨겨 넣어라.” 단백질은 가공이 덜 된 것으로, 예를 들어 살코기, 구운 생선, 두부, 템페(tempeh) 가 좋다.
▲간식: 감자칩 대신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칩이나 통곡물·아몬드가루로 만든 크래커, 혹은 견과류, 트레일믹스, 가공이 적은 스낵바를 선택한다.
코빈은 완벽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건강하게 먹으면 물론 좋지만, 가끔은 자신을 위한 작은 즐거움도 괜찮다. 나도 완벽하게 먹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하루 정도 엉망으로 먹었다고 해서 인생이 망가지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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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had O’Conno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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