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독서칼럼 / 김창만 목사 ·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밀라노 교외의 한적한 정원에 앉아서 찬구 알리피우스(Alypius)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리피우스는 신을 섬기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이집트의 사제들에 관해 이야기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크게 경탄했다.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놀라운 일을 해내는데 교육을 받은 나는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었다고 뉘우치며 말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들어 하늘나라를 차지하는 동안 우리는 머리만 채웠지 가슴은 텅 빈 채로 피와 육체 속에서 뒹굴고 있군.’ 아우구스티누스는 뒤척이는 자기 분열적 삶을 끝장내라는 울부짖음을 뼛속 깊이 느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중에서)
밀라노 교외의 한 정원에서 일어난 아우구스티누스의 첫 회심은 31세에 극적으로 순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의 회심의 긴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이 작은 회심을 시작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세속적 욕망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했다. 자신이 자부했던 종교와 철학적 지식, 엘리트의식, 이기주의, 남에게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하는 출세의욕을 모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성자의 반열에 올랐다.
은총은 언제 찾아오는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출 때 은총은 임한다. 겸손은 무능하거나 유약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비우고 아래로 내려가는 능력이 겸손이다. 겸손은 내려가면서 새로운 무엇을 얻는 신비한 힘이다.
젊은 시절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위로 올라가는데 관심이 많았다. 고향 타가스테를 떠나 로마와 밀라노로 옮겨간 이유가 수사학자로서 명성을 누리고 세속 쾌락을 더 즐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서 얻은 것은 영혼의 목마름과 공허감 뿐 이었다. 거기엔 참 평안과 행복은 없었다.
겸손이란 단단한 자아중심의 고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는 나비의 비상(飛翔) 행위와 같다. 비상과 도약의 은총은 내 안에서 분투하고 노력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은총은 나의 영역 밖에 있다. 자신의 욕망, 의지, 분투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오라. 거기에 창일(漲溢)한 하늘의 은총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자신을 겸손히 비우고 낮추는 순간 은총이 홀연히 우리를 침입한다. 포기가 있는 곳에 영광이 있다.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이요,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그렇다. 모든 은총의 비밀은 자신을 낮추는 데서 시작된다. 은총은 겸손과 비움의 산물이다.
포도나무는 이상한 과수다. 옛 가지에는 새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매년 봄이 되어 새로 나온 가지에만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겨울철 휴지기(休止期)에 농부들은 포도밭에 나와 치열하게 가지치기 한다. 새 가지치기를 많이 해준 포도나무 일수록 열매를 많이 맺는다. 포도나무의 비유로 예수는 말씀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사람도 마찬 가지다. 새로운 도약, 새로운 열매, 새로운 경지를 얻으려면 해묵은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한다. 과감하게 옛것을 잘라 버리고 새로운 것을 택하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놀라운 은총은 그 다음에 우과청천(雨過晴天) 처럼 임할 것이다. 가지치기에 알맞은 겨울이 우리 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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