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심과 달리 재판 관여 직무상 권한 인정… ‘법관 재판권 침해’ 판단
▶ 헌법상 재판 독립 강조… “공정한 재판,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근간”
▶ 변호인 “확립된 직권남용죄 법리 반하는 판결”…기존 판례와 배치

(서울=연합뉴스) 사법부를 뒤흔든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6.1.30 [공동취재]
30일(한국시간)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유무죄를 가른 것은 직권남용죄 범위에 대한 법리 해석이다. 즉, 재판 개입 행위에 직권남용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농단' 또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대다수 관련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기존 대법원 판례와 하급심 판결들 법리의 핵심은 '직무권한 없이는 직권 남용도 없다'는 논리였다. 재판 사무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으므로 그 직무권한을 남용한다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앞서 지난 2022년 서울고법에서 이 논리에 따라 판결했고, 그해 대법원도 이 법리를 인정해 하는 판례를 남겼다.
하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달리 판단하는 판결을 내놓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과 궤를 달리하고 여타 판결들과도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고법 재판부는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에 개입하는 행위는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이라는 직무상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나아가 1심의 논리는 헌법으로 보장된 재판 독립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
지난 2024년 1심은 양 전 대법원장의 41개 직권남용 혐의 범죄사실을 ▲ 직권의 존재·행사 여부 ▲ 직권의 남용 여부 ▲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 등 구성요건을 기준으로 세세하게 따져 판단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에게는 사법사무의 핵심 영역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직무감독 권한이 없으므로,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애초에 재판에 관여할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고 봤다. 이른바 '직권 없이는 남용도 없다'는 법리다.
이러한 논리는 앞서 상당수 사법농단 피고인의 무죄를 끌어냈다.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3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은 임성근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대법원 판례 법리로 남았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논리를 반박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창출했다. 기존 판례 입장과 다른 판단에 관해 대법원이 향후 다시 판단하게 될 전망이다.
우선 1심과 같은 구조로 접근하는 경우 구체적 사건의 재판에 대한 제3자 관여 행위와 같은 '위법·부당한 행위를 할 권한'은 애당초 그 누구에게도 존재하지 않아 원칙적으로 어떠한 사안에서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돼 재판의 독립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1심과 달리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의 재판권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보호 대상으로 삼는 구체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사법행정권자가 형식적·외형적으로 직무권한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 설사 실질적으로 재판 결과와 절차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사건 관계인이나 일반인의 입장에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권자의 재판 관여로 이처럼 재판이 신뢰받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는 경우 개별 법관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는 현실적으로 방해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다.
이는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행위가 실제 법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을 무죄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내세운 원심 판단을 반박한 것이기도 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재판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헌법 제103조와 '법관은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한 법관윤리강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헌법과 관련 규정이 재판의 독립을 명시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재판에 대한 신뢰를 얻기 위한 것이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신뢰는 법치주의를 지탱하는 근간"이라고 짚었다.
재판의 독립은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이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 없이는 법치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고도 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직권남용죄 적용 범위를 더욱 넓힌 이번 판결이 기존 판례를 넘어서는 것이어서 대법원 상고심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실제 행위자는 당시 '하급자'인 행정처 기조실장,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다는 점에서 대법원장이나 행정처장이 직접 행하거나 시킨 것이 아닌데 '상급자'를 유죄로 인정한 부분, 47개 혐의 가운데 2개 행위에 관한 혐의를 인정하면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것은 무거워 보인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되면 변호사 활동을 5년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응보적' 내지 '응징성' 느낌이 있다는 주장도 일각에선 나온다.
이처럼 대법원 판례와 다른 입장을 취한 2심 판결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은 "직권남용죄의 확립된 법리에 반하는 판결"이라고 반발하며 상고 방침을 분명히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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