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대학 실기기간이 끝나보면 부상자 병동도 그만큼은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팔이나 손목이 잘려나간 그림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인데 목부터 머리 부분이 10cm 옆으로 이동한 그림이 있는가 하면 살속에 숨어있는 근육이나 뼈의 생김새를 설명하면서 휘두른 붓질이 해부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난도질한 그림이며 인체의 비율 때문에 완성에 가까운 그림 뒤에 엉뚱한 색감으로 싹둑 싹둑 잘려나간 허벅지 하며…
그래서 실기 교수의 별명이 외과 과장이라고 했었는데 어떤 과격한 여학생은 백정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현대 회화에서 사실 묘사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현대인의 새로운 감성을 이끌 수 있다면 하는 딴은 미학자나 예술가 흉내 내기에 급급한 젊은 가슴 뿐인 학생들의 원성은 대단하였다.
석고 데상의 과정을 통과한 입학시험 후 인체 묘사로 이어지는 대학 초기 과정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 모델 앞에서 당황하게 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능력이나 소질에 실망하게 되는데 혹독한 훈련이 계속되면서 표피의 살색과 명암과 반사광선의 미묘한 색의 변화, 움직이는 힘의 분배 등에 몰두하다 보면 인체의 균형이 일그러지고 전체에 신경을 쓰다 보면 나무토막 같은 질감에 또 외과 과장의 일성이 들린다.
“두드리면 찰싹 찰싹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질감을 살리란 말이다. 사람의 체온은 32도가 아닌가. 피가 도는 살, 따뜻함이 느껴지는 색을 만들어라”
몇주째 노심초사한 화폭 위에 휘둘러지는 백정같은 붓 날림으로 엉망이 된 그림을 보며 잘못 선택한 진로에 대하여 후회하는 동료도 많았고 눈물을 흘리며 외과 과장을 성토하는 여학생도 있었다.
학기가 지나고 제법 사람 냄새 나는 모양이 보일 때 쯤이면 “남의 흉내를 내지 마라. 자신의 색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붓자욱을 찾으란 말이다” 끝도 한도 없는 주문에 슬그머니 군대로 도피하는 남학생이나 시집으로 화가 수업을 끝내는 여학생도 많았는데 따지고 보면 화가가 되는 길도 팔자 소관인가 보다.
남들은 학교 선생이나 그럴듯한 직업인으로 변신도 잘 하는데 진짜 그림 한 점 그려 보겠다고 뉴욕땅 후미진 구석방에서 물감 투성이의 몰골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좋은 그림이 될성 싶으면 발가락부터 지레 찌릿해 지면서 사금 가득히 세상을 끌어 안은 듯한 즐거움에 기고만장 하다가도 몇일이 지나면 시시하게 보이는 그 그림 때문에 잠시나마 천재연했던 부끄러움에 확확 달아오르는 얼굴로 덧칠을 한다.
이젠 진짜 좋은 그림을 그려 보겠다는 욕망에서도 해방되어야 겠다. 진정한 해방감으로 텅 빈 가슴이 아름다웁게 느껴졌을 때 정말 가슴까지도 가난하였을 때 좋은 그림이 탄생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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