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람들은 지금 두 가지 종류로 분열되어 있다. 당장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고, 테러 원흉 빈 라덴을 잡아다가 사람들 보는 앞에서 총살이라도 해야만 속이 시원할 사람들과,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의 무고한 시민들을 무차별 폭격으로 살해하여 더 큰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지 말고, 이 기회에 전세계가 힘을 합하여 테러를 근본적으로 막는 길을 택하는데 미국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사건 후 두 주가 지났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원조 물을 공수하고 있고 무기와 병력은 차츰차츰 그쪽으로 이동해 가고 있지만 정작 범인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중인지는 아무도 모른 채다. 혹 애슈크로프트 장관이라면 자세히 알고 있을까? 어제 엘에이서 커네티컷의 하트포트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엘에이엑스로 가는 길엔 공항 근처의 코너마다 대 여섯대의 경찰 차들이 불을 켠 채 대기중이었고 생각보다 빨리 끝낸 체크인 후 게잇 앞에 앉아선 나도 모르게 함께 탑승할 승객들을 검열하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다른 승객들도 그러했으리라. 캐리 온이 적은 비행기 내부는 시장바닥의 인상이 사라졌고, 세 자리에 두 명 내지 한 명씩 앉아 편하기 그지없지만, 종이박스에 든 말라빠진 샌드위치가 다섯시간 반 비행 중에 얻은 식사의 전부였다(경비삭감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
출발 후 삼십분쯤 지나자 에어버스의 훤한 천장을 이은 조종칸쪽을 바라보며 혹 이 순간에 몇 명이 함께 일어나 벅스컷팅 나이프를 휘두른다면 하는 상상이 일었고 엄한 시큐리티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희미한 불안감을 제외할 순 없었다.
문득 얼마 전까지도 귀찮게만 여기던 커네티컷까지의 직행이 아닌 걸 감사하고픈 심정이 되었고 한시간 이상 나르자 남은 연료로는 폭탄이 불가능하겠지 하는 맘이 들며 안도되었다.
엘에이와 커네티컷을 자주 왕래하는 나로서는 싼 비행기 값을 찾느라 인터넷 서프 하기를 게을리 않았고 아메리칸 에어라인에서 있은 보스턴-엘이이간의 특별 세일에 홀깃한 적까지 있기에 더욱 더 가슴 서늘했다. 간간이 파일롯의 친절한 안내방송이 흘렀다 - 오른쪽 유리창으로 라스베가스가 보인다. 그랜드 캐년이다. 오늘은 특히 멀리까지 잘 보인다 - 그러나 극히 조용한 승객 중에서 그 말에 유의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세시간 반 후 미네아폴리스 공항에 도착했고 이곳은 엘에이 공항보다는 훨씬 북적거렸다.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트포트를 향해서 다시 밤하늘을 날았고, 두 시간 후 비행기를 빠져나오니 게잇 앞에까지 마중나온 남편이 you made it 하며 허그를 한다.
작은 공항답게 얼마 전까지만도 바로 앞에다 파킹을 했었는데 근방의 파크 하우스 건물은 온통 다 닫았고, 멀리에만 주차 가능했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러나 공항서 몇 마일 떨어져 있는 파킹랏 C에만 주차할 수 있는 엘에이엑스를 감안할 때 이곳은 훨씬 쉬워보였고 위험에서 멀리 와 있는 듯 안심이 되었다. 실제로는 사건 발생지인 보스턴과 두시간 거리이면서도.
다음날 아침 브루클린 사는 의사친구는 매일 지나다니지만 아직도 그쪽으론 고개 돌리지 못하겠다고 우울한 목소리로 말한다 - 병원서 의사들이랑 모두 준비 다 하고 기다리는데 글쎄 부상자들이 한 명도 안 오는거야. 우리 병원 뿐 아니라 다 그랬어. 철근이 녹아 내렸을 정도니 무슨 부상자가 있겠어? 화장장 냄새를 모르지만 아주 기이한 냄새가 나. 한 번 맡으면 죽어도 잊지 못할거야. 그런 냄새가 연일 나고 있어. 그런데도 다리 하나만 건너면 길거리서 사람들이 강아지 데리고 산보하고 있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롱아일랜드 거주의 선배는 뉴요커지에 실린 수산 손타크의 글을 보내왔다 -사람들에 대한 실망. 따라서 나도 많은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고 실망시키리라 생각하니 우울하군요 - 라는 말을 덧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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