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이래, 테러의 먼지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이 우리는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우리 민족의 문제, 잘 돼 나가나 싶었던 남북화해의 발걸음이 늑장을 부리고 있는데 그런 일이 자칫 우리들의 화급한 일상에 파묻혀 ‘잊혀진 일’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걱정이다.
탄저균의 위협과 아프카니스탄의 전황보도에 가려 한반도문제가 세계의 이목에서 멀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그 일로 해서 남북문제가 반드시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정황의 첫번째는 북한도 이 기회에 ‘불량국가’‘테러지원국가’의 오명을 벗어버리고 반테러의 국제적 연대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움직임이 한국정부나 부시행정부의 거듭된 요청에 부응하는 신속하고 만족한 정도는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거대한 반테러 물결 앞에서 북한이 이제는 결코 고립될 생각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봐야 한다.
두번째로 상황이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은, 테러집단을 지원한 탈레반정권을 제압하고 나서는 미국의 외교가 조금은 원만하고 포용적이지 않겠느냐 하는 전망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대아랍정책에서만이 아니라 국방과 외교 전분야에서 오만 방자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세번째로 최근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총재직을 버린 일이 남북화해정책을 추친해 나가는 일에서는 오히려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그동안 야당과 보수언론은 남북문제를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문제로 폄하하면서 대북정책을 끊임없이 공격해왔던 것인데 이제는 당리당략이라고 비난할 근거가 없어진 것이다. 남은 임기동안이나마 김대중 대통령은 홀가분하고 초당적인 입장에서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지적한 이러한 상황변경들이 반드시 긍정적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데에 우리들의 고민은 있는 것이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의 꿈은 버릴는지 몰라도 군부는 여전히 개방을 거부하고 체재유지를 원하고 있으며 미국도 한반도 문제에는 여념이 없거나 아예 방치해두려 할지도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적이탈이 초당적일수는 있어도 오히려 남남갈등이 더 세분화되어 이전보다 더 통제불능의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600만 해외동포, 특별히 미국에 살고 있는 재미동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주말 LA에서는 아시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두개의 한국과 통일로 가는 길’이란 세미나가 열려 새삼 한반도 통일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깨우쳐줬는데 이 자리에 나온 로버트 스칼라피노 UC 버클리 명예교수와 마이클 아마코스트 부르킹스 연구소 소장, 그리고 이채진 클레어몬트 맥키나대학 교수 등은 그 사이 너무 커진 국민들의 기대와 조급증으로 현재의 답보상태가 실망감으로 번지고 있지만 이제는 남북문제를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필요가 있으며 국내동포보다 재외동포의 역할과 관심이 더욱 중요한 때라는 공통된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러한 지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80년대 남북한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을 때도 남북의 만남을 주선했듯이 지금도 다시 북한의 의심을 덜어주면서 남북사이의 완충역할을 해 나갈 수 있고 미국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종식시킬 수 있도록 설득해나갈 활동공간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이번 주말의 지역 민주평통 전체회의를 계기로 해외에 사는 우리이지만 민족의 숙원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고 이 땅에 통일의 불씨가 다시 타오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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