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오래 전 중국에 갔을 때다. 일행 몇분과 한 식당에 들렀다. 조선족 운영의 대중식당이다. 미국서 온 사람이라고 특별 대접을 하는지 바로 안방을 내준다.
식사가 대충 끝나자 주인은 TV를 켠다. 알고 보니 가라오케다. 그리고는 미국서 온 손님부터 무조건 한 곡조 뽑으라는 주문이다.
그것도 허연 형광등 아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안방에서. 먼 곳서 온 손님 대접인 모양인데 무드 같은 건 아예 생략해 버린 분위기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제법 번듯한 식당은 물론이고 행세께나 하는 사람들은 모두 집안에 가라오케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였다 하면 노래요, 그래서 한국 대중가요들은 대인기라는 것이다. 광활한 만주 북녘 끝에 자리잡은 조선족 마을에도 노래방 문화가 벌써 깊숙이 침투해 있었던 것이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날 때가 있으며 죽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성경 전도서의 구절이다.
이 전도서 기자가 요즘 한국인의 생활에 젖어들었다면 이 구절은 이런 식이 되지 않았을까.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노래하고 또 노래해, 무조건 노래할 때가 있느니라…"
연말이다. 잦은 모임이다. 모임의 명분은 하나 같이 망년(忘年)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온통 노래를 위한, 무조건 노래를 하기 위한 모임 같아서 하는 말이다. 노래를 해야만 한 해가 잊어지는지…
싫든 좋든 마이크는 돌아가게 돼 있다. 적게 잡아 두세 곡이지 대여섯 곡은 각오를 해야 한다. 무슨 얘기라도 나눌라치면 당장 ‘지방방송 스톱’ 경고등이 켜진다.
노래를 못하면 죄인이 된 심정이다. 이쯤 되다보니 ‘우리는 이 땅에 노래를 부르러 왔노라’하는 무슨 숙명 같은 것도 느끼게 한다. 마이크를 잡은 모습에는 자못 비장감까지 돈다.
연말이다. 한 해를 보내는 시즌이다. 그리운 얼굴들을 만난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천편일률, 만나기가 무섭게 노래만 한다. 이 것도 고역이다.
더군다나 노래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강요하고 안 하면 벌주를 먹인다. 이는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일종의 테러다. 놀이문화의 다양화를 꾀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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