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께 현재의 터키 영토인 소아시아의 한 사막지역에 마음씨 좋은 성 니콜라스 주교가 살고 있었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낙으로 삼던 니콜라스는 이웃 세 자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됐다. 사랑하는 남자들이 있는데도 결혼지참금이 없어 애만 태우는 세 자매를 가련히 여긴 니콜라스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내성적인 니콜라스는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길 원치 않았다. 궁리 끝에 주머니에 금을 싸 가지고 세 자매 집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밀어 넣었다. 마침 이 금주머니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 벽난로에 걸어두었던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선물을 고대하는 어린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양말을 머리맡에 걸어두는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소아시아에서의 소담스런 얘기가 유럽으로 옮겨갔고 특히 네덜란드에서 극진한 사랑을 받았는데 이들 중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이 전통을 지속시켰다는 게 ‘정설’이다. 니콜라스의 훤칠하고 호리호리한 체형과 달리, 산타는 배가 불룩하고 흰털이 수북한 옷에 검은 벨트를 두르고 방울 달린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미국 만화가 토마스 내스트가 ‘뚱보 산타’가 넉넉해 보이지 않을까 해서 1863년 산타를 처음으로 이렇게 묘사한 때문이다.
그런데 인정 넘치는 산타가 어찌된 일인지 ‘성탄 대목’을 앞두고 혼쭐나고 있다. "산타 축제는 은근히 다른 종교보다 기독교를 편애하는 인상을 준다"는 비교적 부드러운 비난에서부터 "산타는 기독교인들이 만들어낸 거짓이며 그들의 마스코트에 불과하다"는 강도 높은 공세까지 다양하다.
일부 흑인은 "산타는 백인들만의 축제를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므로 흑인들을 위한 별도의 인물을 부각시켜 축제를 열자"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또 산타가 어린이들에게 잘못된 허상을 심어준다는 지적도 있다. "10세 때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는데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당시의 허탈감이 되살아난다"는 한 주부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처음부터 산타의 존재에 대해 일러준다고 했다.
그래도 산타를 기다리는 동심은 어른들의 공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풀대로 부풀어 있다. 상점에 몰린 어린이들은 양말이 커야 선물도 클 것이라며 천진스럽게 ‘큰 놈’을 고른다. 물론 산타에 대해 의혹을 품기 시작하는 자녀들에게서 ‘송곳 질문’을 받는 부모들은 고민이라고 한다. 하지만 "옛날에 속아서 억울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니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거짓말’을 조금은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자연스레 진실을 접할 자녀들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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