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차만재 칼스테이트 프레즈노 정치학과 교수
2001년을 돌이켜보면서 9월11일을 생각 안 할 수 없다. 테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이 엄청난 사건이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과거 10년간 미국은 세계화 시장 논리로 세계에 군림해 왔다. 미국을 본 딴 시장개방과 통신혁명, 민주화를 다른 나라들에 강요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화 실천에는 모순이 있었다. 국제적 자본 이동과 통신확장에는 적극적이면서 노동력 이동에는 소극적이었다. 미국으로 노동인구가 몰려들 것을 우려해 이민 사증발급, 국경수비 관련 정책들을 조절하면서 겨우 개방사회의 면모를 지키려 애써 왔다.
9월11일 테러사건은 미국이 이렇게 개방 면모나마 지키려던 노력에 대폭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중동인구 사증발급 심사 강화로 선별적 외국 인구유동 봉쇄정책을 쓰는가 하면 국가 방위청이라는 이름의 새 기구를 앞세워 불순분자 침투를 발본색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19세기 식 고립정신을 반영하는 것으로 국제화시대에 걸맞지 않는다는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에 사는 주로 중동계 사람들 5,000여명을 색출하여 이들의 개인신상을 연방수사국이 조사하기 시작하였고, 각 시 경찰국이 이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테러 공모, 혹은 테러범 은닉 범죄자는 군재판부 즉결심에 붙일 수 있다는 행정 명령도 발효하였다. 테러에 관한 한 인신보호령 실행도 정지시키기로 하였다.
이 일련의 정책들이 테러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내부 결속책이라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나라 밖에서의 테러 발본색원책이다.
미국이 당한 테러의 엄청남이나 충격을 축소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간인 군재판, 인신 보호령 정지, 인종에 따른 표적수사 등은 자유와 인권의 보루인 미국의 위치를 실추시키고 있다. 인종적 다양성이야말로 미국의 힘이라고 역설하던 정치인들이 특정 지역 태생 이민자들을 무차별로 연관지어 표적 수사를 받게 한다는 것은 인종차별이며 인권유린이다.
2차 대전 때 일본이 진주만을 폭격하자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수용했었다. 한인들은 국민회가 발간한 "I am Korean"이라는 이름표로 일본계와 스스로를 구분함으로써 수용소 행을 모면했다. 앞으로 중국과 미국간에 무슨 일이라도 생겨 보라. 단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우리도 부당하게 연결 지어지면서 눈총을 받는 일이 없을 것 같은가.
테러 전쟁은 이미 소말리아로 확산됐다. 이라크와 북한도 공격 가능 대상이다. 또 미국은 탄도요격미사일 제한협정에서의 탈퇴도 선언하였다. 이로써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의 걸림돌을 제거했다. 미사일 방어체재는 무기경쟁의 악순환을 초래하는 일이다. 테러 전쟁도 폭력을 되풀이하는 승리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를 추진하는 데는 군산(軍産) 복합적 타산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본다.
그래도 미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다. 미국에는 청교도적 정신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참회와 후회로 고민할 줄 안다. 언론, 집회, 종교의 자유도 아직 있다. 수용소형을 치른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의회 결의로 참회하고 보상했다.
미 교계를 비롯, 각계에서 전쟁 확산보다 화해를 권면하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연방수사국의 표적수사에 오리건의 한 도시 경찰서장은 협력할 수 없다고 나섰다. 아프간 인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북가주 프리몬트시 경찰서장도 협력을 거부했다. 그 외 몇개 도시가 따랐다.
인권 존중은 미국의 진정한 힘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기에 인권 유린에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미국의 힘을 볼 수 있다. 다원화 정치가 또한 힘이다. 미행정부 내 호전적 군산 복합체제를 대표하는 국방장관 럼스펠드와 외교력을 대표하는 국무장관 파월의 정책대결은 약점이 아니라 힘이다. 의회나 언론, 압력단체, 일반 여론도 무시 못할 힘이다. 미국의 이 모자이크에 우리도 주인의식으로 적극 참여할 것을 다시 한번 다지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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