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한국에서 가장 유행한 말은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였다. 그때까지 별로 빛을 못 보던 코미디언 정주일씨는 이 말 한마디가 유행어로 뜨면서 그 자신도 순식간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가 무명의 코미디언 대열에서 인기인으로 뜨는데 단 2주일이 걸려서 이름도 ‘이주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주일씨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폐암에 걸린 그가 산소호흡 호스를 코에 단채 ‘담배 끊으라’고 충고하는 초췌한 모습이 ‘백문이 불여일견’식의 충격이 되면서 새해 벽두 ‘금연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주일씨 폐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두달여 전이었다. 초가을까지만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했던 그가 병원을 찾은 것은 지난해 10월말. “몸이 약간 이상해” 검사를 받았더니 의사가 “주변을 정리하라. 이미 늦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담배를 끊지 못한 것이 한”이 된 그는 현재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보건복지부와 손을 잡고 금연 캠페인을 적극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런 공식적 캠페인 없이도 그의 투병 소식 자체가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금연 운동에 불이 붙었다. 금연을 새해 결심으로 삼은 사람들이 늘어서 담배 판매가 줄고, 니코틴 패치같은 금연 보조물 판매는 눈에 띄게 늘었으며, 금연 수당을 지급하는 기업들도 생겨나서 가히 ‘이주일 신드럼’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한다.
사람이나 사조, 혹은 물건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지만 담배처럼 영욕의 명암이 뚜렷한 것도 드물다. 불과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흡연은 종종 멋과 자유의 표현수단, 여성들에게는 전통에 대한 도전의 상징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17세기쯤에는 담배가 건강에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1665년 런던에 전염병이 돌자 보건당국이 흡연을 권장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대우를 받던 담배·흡연이 지금은 아무리 구박해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었다. 예를 들어 가주 보건당국은 더 이상 흡연자 건강 보호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금연 프로그램들을 활발히 지원했지만 이제는 간접 흡연자 보호에 더 중점을 두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금연 성공률이 너무 낮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주일씨 케이스는 미주 한인들의 금연 결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주일 신드럼’은 금연 동기부여에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심심해진 손, 술 한잔 마시면 간절해지는 흡연욕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니코틴은 의지만으로 끊기에는 너무 중독성이 강하다. 구체적인 상황을 염두에 둔 세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정말 끊을 생각이라면.
<권정희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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