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3부작 소설 ‘대지(The House of Earth)’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여류작가 펄벅은 저능아 딸을 두었었다. 딸이 네 살 때 정신장애아인 것을 알고는 딸의 교육을 위해 전국을 누볐고 마침내 뉴저지주의 한 학교를 찾아냈다는 일화가 있다.
펄벅의 ‘자라지 않은 아이(The Child Who Never Grew)’는 딸에 대한 가슴앓이가 낳은 작품이다. 장애아에 대한 한없는 사랑이 그를 대문호로 만들었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친딸뿐 아니라 미군들이 제 2차 대전 때 아시아에 남긴 사생아와 장애아들을 위해 ‘펄 벅 재단’을 만들고 700만달러를 희사해 이들의 부모역할을 했다.
남의 자녀를 맡아 키우는 것은 그 역사가 오래다. 세계 최초의 법전인 함무라비법전에 이미 입양에 대한 법규가 들어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가문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거나 대를 이을 목적으로 입양을 하곤 했다. 미국에서는 1851년 매사추세츠에서 사회복지 차원의 입양법이 제정됐다. 1890-1920년 영국과 미국은 불명확한 입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입양을 합법화했고 이후 미국에서는 입양이 활성화 됐다.
한국에서도 입양의 역사는 짧지 않다. 고려시대 때는 동성 양자제도가 마련돼 가부장적 대가족제를 유지토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어 조선시대에는 가문이 끊이지 않고 조상들에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양자를 들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다 한국전과 함께 전쟁고아와 혼혈아가 많이 생기고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해지면서 현대적 의미의 입양이 제도화된 것이다.
한국 보건복지부와 미 국무부에 따르면 2000년 한해동안 해외로 입양된 한국인은 총 2,360명이고 이중 1,794명이 미국으로 건너갔다. 특히 장애아 634명이 해외로 입양됐으며 이 가운데 400여명이 미국 가정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미국 사람들이 가장 인심이 후한 모양이다.
한국이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수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고아 수출국’이란 꼬리표를 떼어 내지 못하고 있다. 혈통주의를 유난히 따지는 한국인들인지라 남의 아이를, 더욱이 장애아를 데려다 키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게다.
그래도 이곳 한인들은 피를 중시하는 ‘속인주의’가 아닌 ‘속지주의’를 따르는 미국 땅에서 인정 많은 미국인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미국가정이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겠지만 한국 장애아가 한인가정에 둥지를 틀면 한결 더 포근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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