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겨울의 논산은 그렇게 추웠었다. 1월 18일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체감온도로는 세상에서 제일 추운 곳이 그 곳이었다. 첫 날 내가 신고 갔던 신발을 벗어놓은 이후 두 번 다시 그 신발은 볼 수가 없었다.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지만 눈에 젖어 축축해지고 맞지도 않은 신발을 끌면서 오직 발길에 채이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밀려다녀야 했다. 일주일이 지나서 훈련화가 나왔을 때쯤에는 이미 발가락에 동상이 걸려 있었다. 그 후 본격적으로 실시된 4주간의 전반기 교육은 혹독했다.
춥고, 배고팠고, 매맞는 것이 진저리가 났다. 오직 먹고싶고 자고싶다는 것 외의 다른 모든 욕망들은 유보되고 있었다. 아침 6시 기상나팔 소리가 울리면 일어나 모포를 개키면서 내 몸이 또 하루를 버티어줄까 염려했고 밤 10시 취침시간이면 내 몸이 내일 아침에 일어나 줄까 염려했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말이 훈련병들간에 가장 많이 쓰이는 유행어였지만 느낌은 도무지 논산훈련소를 나가는 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4주간이 지나고 나서 2월 중순이 되었을 때 6주간의 후반기 교육을 위해 다른 연대로 이동을 했다. 여전히 날씨는 춥고 배는 고팠지만 마음에는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 오후, 휴식시간에 양지쪽에 앉아 화랑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무는데 내무반 막사 바로 옆에 서 있던 목련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삭막한 훈련소 막사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홀로 버텨 선 목련을 보면서 왠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 2월의 목련을 향해 나는 꽃피우라고 응원했다. 그 목련에게 소망을 걸었다. 동기생들이 화장실 벽에다 날짜들을 쭉 써 놓고 하루씩 지워나갈 때 나는 날짜를 기다리기보다는 꽃망울을 기다렸다. 어쨌든 4월이면 목련은 꽃을 피울 것이지만 난 4월보다는 꽃을 기다렸다. 목련이 나의 소망이었고 그 꽃망울이 나의 구원이었다. 그 때부터 나와 목련은 날마다 만나서 서로를 위해서 기도했다.
한 번이라도 더 쳐다봐 주면 하루라도 더 빨리 꽃을 피울 것 같아서 오고 며 눈길로 격려했다. 고맙게도 목련은 그 혹독한 논산의 추위를 밀쳐내면서 마침내 생명을 내 뿜었다. 모난 회색 벽돌의 막사들 사이에서 보란 듯이 연분홍의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다. 그리고 4월 8일, 나는 논산훈련소를 나왔다.
그 목련을 24년만에 다시 만났다. 보내기 싫은 사람을 보내야 하는 일이 아직도 힘겨워 하나님 앞에 그 마음을 토로하려고 지난 금요일, 스캇 벨리에 있는 기도원에 올라갔었는데 문득 목련 한 그루가 다가왔다. 아련한 감동과 함께 한 참을 그 목련에 붙잡혀 있었다. 사실이 그런지는 몰라도 논산훈련소의 목련이후 처음으로 목련을 본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논산의 그 목련이 여기 캘리포니아에 와 있을 리 없지만 내겐 지금 보는 목련이 24년 전 논산에서 봤던 바로 그 목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나는 목련이 한번만 펴주기를 바랐는데 목련은 그 후에도 24번이나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목련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었나 보다. 필요할 때는 그토록 애달프게 바라보다가 아쉬운 일이 없다고 24번씩이나 꽃망울을 피워 올렸을 목련을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을 생각하니 내가 참 각박한 사람이라는 부끄러움이 일었다. 반면에 누가 봐주던 안 봐주던
투정하지 않고 때가 되면 꽃망울을 피워 올렸을 그 목련은 참으로 고맙고 귀한 존재로 여겨졌다. 겨울 내 웅크리고 있다가 혼신의 힘으로 겨웁게 생명을 피어 올렸을 텐데 목련은 미련 없이 그 큰 잎들을 사방으로 털어 내고 있었다. 듬성듬성 비워진 꽃송이들만이라도 어떠냐는 듯이 의연한 모양새가 24년만에 만난 나를 알아보고 위로하는 듯 했다.
내가 목련을 잊고 있었던 지난 24년 동안에도 사람들은 오가며 목련 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었거나 아니면 또 다른 긴 사연의 편지를 쓰거나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때마다 목련은 사람들의 그리움과 소망을 다 받아들여 몸 안에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봐주는 사람이 있건 없건 그 그리움과 소망을 꽃으로 피우고 향기로 내 뿜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보내기 싫어 힘겹게 보낸 누군가가 먼 훗날이라도 찾아오면 여전한 품으로 맞이하여 주는 것이다. 깊이 간직하고 있던 그 사람 몫의 그리움과 소망을 생명으로 터뜨려 오늘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아 아, 목련 같은 사람이고 싶다.
아 아, 목련 같은 사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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